전두환 각하께서 ‘Good idea’

광주 5·18 민주화운동 39주기를 앞두고 15일자 아침신문 가운데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먼저  진상규명 탐사보도와 기획기사를 각각 내놨다. 

경향신문은 1980년 2군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문서를 입수해 5월23일자 기록에 “각하께서 Good idea”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손글씨가 적힌 사실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기사를 1면 머리기사에 이어 4,5면 전면을 털어 보도해 가장 집중력을 보였다. 내용도 단순 기념보도가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1980년 5월 한 달간 행적을 추적해 광주 진압의 책임을 물어가는 탐사보도 형태를 취했다. 

5월23일은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면서 계엄군이 잠시 광주 시내에서 후퇴한 시점이었다. 2군사령부는 이날 ‘충정작전’이란 이름으로 광주 재진입을 건의했다. 이날 회의엔 진종채 2군사령관이 계획을 보고하고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누군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반응과 지시사항을 자필로 옮겨 적었다.

▲ 15일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 15일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은 “당초 5월24일 오전 2시에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작전은 군사행동에 반대한 미국의 요청으로 국방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에는 “5월25일 오전 2시 이후까지 작전 연기”라고 기록돼 있다. 계엄군은 5월27일 새벽, 광주 재진입작전을 실행해 옛 전남도청 등을 무력 진압했다.

경향신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최종 진압작전의 기획단계부터 개입해 작전을 승인했음을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 15일자 경향신문 5면.
▲ 15일자 경향신문 5면.
이어 경향신문은 15일자 5면에도 ‘각하로 불린 전두환, 광주 재진입·도청 진압회의 모두 참석’이란 제목으로 관련 기록 12건을 통해 1980년 5월 전두환의 한 달간 행적을 추적해 “권력 찬탈을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4면엔 1980년 5월 한 달간 전두환이 등장한 각종 회의와 행사장 참석 행적 34건을 분석해 1980년 4월14일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된 뒤 5월4일 시국수습방안 회의 참석 이후 5월31일 국보위 상임위원장 취임까지 모든 장면을 날짜 순으로 기록했다. 경향신문이 기록한 전두환의 1980년 5월 행적은 권력장악을 위한 동분서주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선 “당시 나는 광주에서 진행되는 작전상황과 관련해 조언이나 건의를 할 수조차 없었다”고 해명했다.

▲ 15일자 경향신문 4면.
▲ 15일자 경향신문 4면.

한겨레는 사라진 사람들에 주목 

한겨레신문은 ‘5·18 사라진 사람들’이란 기획기사로 1980년 광주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한겨레는 15일자 10면에 기획기사 첫 회분으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 15일자 한겨레 10면.
▲ 15일자 한겨레 10면.
한겨레의 이 기사는 ‘주남마을 버스 총격 최소 3건…22구의 주검이 사라졌다’는 제목을 달고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의 사격명령에 매복한 군인들이 집중 사격해 버스 속 승객 10명이 몰살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주남마을 일대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총격사건 5건을 날짜와 피해자, 목격자 등으로 나눠 상세히 소개했다.

1980년 광주에서 사라진 사람은 확인된 사람만 70여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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