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국회 일정 실력 저지를 두고 조선일보가 군사정부에도 없었던 ‘선거법 날치기’라며 두둔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때 한나라당이 수없이 감행한 날치기 때마다 양비론 또는 ‘다수결원칙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민주당 비난에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 ‘팩스제출·병상결재로 선거법 날치기, 군사정부도 이러진 않았다’에서 전날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 몸싸움 사태를 두고 “과거에도 날치기 처리는 있었지만 게임의 규칙인 선거제도만은 여야 합의로 정한다는 원칙이 지켜져 왔다”며 “그런데 스스로 ‘촛불 혁명’으로 태어났다는 정권이 군사정부도 않던 선거법 날치기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여야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라던 국회의장이 병상 결재라는 편법까지 써가며 이런 무리수에 동참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선거법 개정안을 “축구 시합이 배구 시합으로 바뀐다고 할 정도로 큰 변화다. 선거제도 자체로 한국당 의석이 줄어드는 데다 친박 성향 신당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당에만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조선일보는 개정안대로 하면 지역구 의석이 줄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승자독식, 거대 양당 나눠먹기라는 구태정치가 개선된다는 건 거론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선거법 날치기’는 안된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다. 

 

▲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8대 국회 최악의 날치기 파동이었던 2009년 7월의 미디어법 날치기였다. 이 때 조선일보는 폭력사태에 관한 사설을 이틀 뒤 썼다. 조선일보는 그해 7월24일 사설 ‘이렇게 가면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것’에서 “여당은 소수 야당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야당은 극한 투쟁이란 구시대적 발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헌법 49조에 규정된 ‘다수결에 따른 국회 운영’이란 기본 원칙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며 “대한민국 국회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미디어법 날치기를 두고 조선일보는 “격렬한 몸싸움 끝에 사실상 여당의 단독 처리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국회 출입증이 없는 언론노조원 100여명이 국회 본청에 무단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여당 의원들이 대리투표·재투표에 나서 원천무효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런 낯 뜨거운 논란이나 벌이고 있는 것이 18대 국회의 현주소”라며 “이대로 가면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날치기통과 다음날 사설 ‘지상파 독과점 유지시킨 미디어법이 남긴 숙제’에서 날치기나 단독처리에 관한 언급없이 법안이 반쪽짜리, 모순투성이라며 불만을 늘어놨다. 자신의 자회사 TV조선을 탄생시킨 이 법안도 모자라다는 투정이다. 조선일보는 “미디어법 통과는 어떤 분야든 ‘개방’과 ‘경쟁’이 상식인 글로벌 시대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구시대적 진입 장벽 하나가 일부라도 무너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번 선거법 패스트트랙의 장점은 외면한 것과 달리 10년 전엔 당시에 날치기로 통과된 법의 단점은 쏙 빼고 아전인수격 장점만 늘어놨다.

한나라당 국회 날치기에 당시 조선일보는 양비론이나 폭력사태 비판으로 일관했다. 조선일보는 2010년 12월9일자 사설 ‘모양새 좋지 않은 연말 국회의 예산처리’에서 전날 한나라당 새해 예산안 날치기를 두고 “여야는 이번 폭력사태를 통해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절차의 정당성’ 원칙을 다시 걷어찼다”면서도 “지난 17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등을 놓고 벌어졌던 여야 격돌 때의 주·조연들 가운데 다수가 이번 난투극에도 앞장섰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이날 폭력을 행사한 이들을 두고 “오늘 의사당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의자를 내던지고 자기네끼리 멱살다짐을 한 의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뒀다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표로 응징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국회의장은 폭행 의원들의 실태를 조사해 그들의 이름과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1년 내내 인터넷에 게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09년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이 의장석을 둘러싼 채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시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009년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이 의장석을 둘러싼 채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시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010년 12월8일 새해 에산안 날치기를 저지하려던 민주당의 김유정 의원실 박 모 비서관이 누군가에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사진=트위터
▲ 지난 2010년 12월8일 새해 에산안 날치기를 저지하려던 민주당의 김유정 의원실 박 모 비서관이 누군가에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사진=트위터

이듬해 연말 벌어진 한미FTA 날치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는 2011년 11월23일 사설 ‘한미FTA 성패는 이제부터 우리하기 나름이다’에서 “한·미 FTA는 여·야가 합의로 처리하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여·야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표결로 처리됐어야 한다”고 여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뒤이어 “야당 역시 FTA를 국익보다는 내년 선거에서의 득실(得失)을 기준으로 저울질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고 썼다. 점잖은 양비론처럼 읽힌다.

이번에 조선일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군사정부 때도 안하던 선거법 날치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여야의 ‘패스트트랙’ 절차 진행을 비판하고 있다. 채이배 의원 등을 감금하는 등 다수의 무력행사를 한 자유한국당에는 아무 비판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날치기 때도 굳이 양비론을 고집해온 조선일보가 이번엔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한 자유한국당에 한마디 지적도 하지 않은 것은 내로남불 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

▲ 조선일보 2019년 4월26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9년 4월26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09년 7월24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09년 7월24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0년 12월9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0년 12월9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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