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는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 생명권을 대립시킨 종전 결정을 깼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며 임신한 여성을 신체‧사회적 보호할 국가의 책무를 천명했다. 그렇다면 여성이 임신 유지를 결정한 경우에 국가 책무는 어떨까.

사회경제적 약자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낙인찍는 사회에서 출산을 결정한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위기임신출산 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미혼모지원을 통해 본 위기임신출산 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미혼모지원을 통해 본 위기임신출산 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위기임신’은 그 개념이 분분하지만, 포괄해 요약하면 임신 상태에서 신체·사회·경제적 위기를 맞은 상황을 일컫는다. 예컨대 혼인 여부를 떠나 미성년자·노숙인·장애인 임산부나, 알콜·약물 중독, 이혼, 배우자 사망·유기·학대 등에 처한 임산부의 경우를 포괄한다. 토론회에서는 비혼 임신·출산과 청소년 임신·출산이 대표사례로 거론됐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국가가 ‘태아 생명권’을 들며 임신중지를 처벌해왔으면서도, 정작 위기상황에서 출산한 여성과 태아의 인권은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혼 한부모 가정의 경우 출생신고부터 하기 어렵다. 양육지원을 받으려면 출생신고는 필수다. 오영나 대표는 “현행법에 따르면 비혼부가 아동을 출생신고할 때, 어머니가 유부녀이면 그 배우자도 ‘부’로 이중등록된다. 아버지가 비혼이라고 해도 어머니가 비혼이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든다”고 꼬집었다. 오 대표는 “우리나라는 본래 부모 중 한쪽이 확인되면 그 한쪽의 자녀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므로, 무리 없이 부모 한쪽의 자녀로 출생신고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해 ‘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를 세워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현재 정부는 비혼·청소년 임산부 지원서비스를 대부분 여러 비정부 단체에 맡기고 있다.

오 대표는 “비혼 임산부를 위한 지원서비스로는 한부모가족상담전화와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정도가 운영될 뿐이다. 위기상황에 처한 임산부에게 혼인 여부를 불문하고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출산·임신중지 등을 경험한 청소년들을 지원해온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도 출산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을 지원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배보은 대표는 “현행 제도 하에선 비혼 미성년 임신 커플임에도 동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부모가족’ 및 ‘청소년미혼모’ 지원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산을 결정한 청소년들은 찜질방이나 모텔을 전전하게 되기 일쑤다. 임신중지를 선택한 청소년들은 국가가 보호하고 치료하지 않아 피폐해지고, 원치 않는 재임신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고 했다.

▲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등 주최로 열린 25일 ‘미혼모지원을 통해 본 위기임신출산 지원제도의 필요성’ 토론회에서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등 주최로 열린 25일 ‘미혼모지원을 통해 본 위기임신출산 지원제도의 필요성’ 토론회에서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편 토론회에선 ‘위기임신’이라는 특정 상황을 강조하기 앞서, 임신과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뒤 보편적 지원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민문정 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위기임신·출산’을 따로 정해 지원하는 방안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신·출산·양육자가 자신의 곤궁함이나 어려움을 증명해야 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임신·출산’ 개념의 모호성도 우려점이다. 김민문정 대표는 “발제자마다 위기임신·출산을 다르게 정의하는데, 대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황’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결국 여성에게 ‘낳으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어 오히려 여성의 재생산권을 제한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민 대표는 “임신과 출산이 위기라기보다, 임신을 결정한 이들이 출산한 뒤 어떻게 양육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국가가 임신중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상황을 전제로 지속가능하고 보편적인 출산과 양육시스템을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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