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자 중 2500자. 지난해 3월26일 김성탁 중앙일보 런던 특파원 기사 중 외신과 겹치는 부분이다. 얼개가 아니라 내용 대부분이 문장 단위로 유사하다. 인터뷰이 7명 모두 외신 취재원이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관련 기사를 일부분 떼왔다.

지난 12일 게재됐다 삭제된 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칼럼‘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는 6문단 중 5문단, 글 60% 가량이 4월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설과 흡사했다. 출처는 없었다. 무단 외신 인용 칼럼은 중앙일보에서만 2개가 더 나왔다.

중앙일보 논란이 연이어 터지며 표절이 언론계 화두가 됐다. 기사 표절·짜깁기 관행은 한국 언론의 오랜 문제지만 누가 먼저 공론화시킨 적은 없다. 이 침묵을 ‘공대 교수’가 깨뜨렸다. 감동근(41)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심 특파원 칼럼 표절을 처음 발견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렸고 ‘외신 짜깁기’ 기사를 3건 더 찾았다. 관련 블로그 글은 공유 횟수만 1100회로 웬만한 기사보다 널리 읽혔다. 미디어오늘은 감 교수를 서면 인터뷰해 언론계 표절 관행에 대한 그의 비판을 들었다.

▲ 감동근 교수가 지난해 3월26일자 김성탁 중앙일보 특파원 기사를 영국 가디언·이코노미스트·블룸버그 관련 기사와 비교한 결과 상당부분이 짜깁기한 내용으로 드러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감동근 교수가 지난해 3월26일자 김성탁 중앙일보 특파원 기사를 영국 가디언·이코노미스트·블룸버그 관련 기사와 비교한 결과 상당부분이 짜깁기한 내용으로 드러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국 언론 표절 관행 ‘심각 수준’

감 교수가 지적한 기사 중 스트레이트(일반적 사실보도 기사)는 없다. 모두 칼럼과 해설기사다. 기자 고유의 분석·관점이 반영되는 글이다. ‘보도는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특성상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반박이 불가능하다. 감 교수는 이마저도 “가장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외신을 나란히 펴 놓고 한 문장씩 베꼈다고 확신이 드는 경우만” 지적했다.

표절기사 4건을 찾는 덴 1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밤에 아픈 아이를 재우다 우연히 국내 기사를 읽게 됐고 5일 전 읽은 WSJ 사설을 붙여넣은 듯한 칼럼을 봤다. 그는 “사설을 통째 베낄 정도면 다른 칼럼은 멀쩡할까”란 생각에 손 가는 대로 한 번 찾아봤다. 김성탁 특파원의 칼럼과 기사, 심 특파원의 또 다른 칼럼은 그렇게 확인됐다. 그때쯤 “표절이 이미 일상화된 패턴”이라 확신해 검색을 그만뒀다. 감 교수가 계속 찾았다면 표절 의심 기사는 더 나왔을 수 있다.

감 교수는 김 특파원 해설기사를 두고 “중앙일보의 롱폼(long-form) 저널리즘은 wrong-form인가”라 물었다. 표절 수준이 과도할뿐더러 롱폼 저널리즘 취지에 반해서다. 그의 확인대로 외신과 겹치는 부분에 줄을 그어봤다. 11%만 깨끗하게 남았다. 문장 성분과 순서가 똑같은, 즉 순수 번역문도 있었다. 7명 인터뷰이 모두 외신 3곳에서 인용했지만 출처표시는 2명에게만 했다.

롱폼 저널리즘은 피상적 보도를 지양하는 일반 기사와 단편 소설 사이 분량의 심층 보도다. 취재 없는 외신 인용은 취지에 반한다. 그는 “이 기사는 도입 문장과 맨 마지막 문장을 빼면 모두 베낀 것이고 출처를 슬쩍 밝혔지만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부터가 기자 생각인지를 통 알 수 없다”며 “‘이코노미스트’ 기사 본문 70%와 그래프를 그대로 베꼈다. 전재료는 지불했는 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 감동근 교수가 자신의 브런치(블로그)에 올린 한국 언론 보도 비판글. 사진=감동근 교수 브런치 갈무리
▲ 감동근 교수가 자신의 브런치(블로그)에 올린 한국 언론 보도 비판글. 사진=감동근 교수 브런치 갈무리

“구조만 탓하면 모두가 망한다”

표절은 당장 윤리에 반하지만 독자에게도 폐해다. 좋은 보도는 언론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데 표절은 남의 것을 훔쳐 과거의 것을 반복할 뿐이며 오보도 재생산된다. 한국 언론은 뉴스룸 내 실적 압박을 이유로 베껴쓰기 관행을 유지하지만 윤리의식이 무뎌지며 표절까지 관행이 됐다. 감 교수는 “언론의 문제가 바로 우리 사회의 폐해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계속 잔소리를 한다”며 “아직 우리 언론에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감 교수가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11월28일 중앙일보 ‘女과학자 조선영,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 보도를 두고 감 교수는 기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기사는 ‘세계 1% 수학자로 뽑힌 여성학자가 경력단절, 지방대 출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아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았다’고 썼다. 기자는 논문 피인용지수를 핵심 근거로 삼았지만 부족한 설명이었다. 감 교수는 “수학계에선 ‘피인용지수’로 학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고 논문이 실린 저널은 검증이 필요한 저널이며, 그 학자가 속한 연구팀은 이와 관련된 상습적인 윤리 위반으로 학계에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가 허술했단 지적이다.

감 교수는 당시를 ‘부조리’로 기억했다. 기자와 매체의 태도에 큰 실망을 하면서다. 기자는 교수에게 “어설픈 논리로 중앙일보와 취재원을 모욕했다”며 명예훼손죄와 ‘감방’을 거론했다. 논리적 재반박이 아니었다. 브런치에 올린 감 교수 글은 4400회 가량 공유되며 호응을 얻었다. 그러던 중 기자는 기사의 인터뷰이가 ‘딸이 상처를 받았다’고 쓴 포스팅을 공유했다. 감 교수는 “취재원 뒤로 숨는, 가장 실망스러운 장면이었다”며 “우리 언론의 온갖 문제가 집약된 부조리극을 보는 듯 했다”고 밝혔다.

‘서로 감싸주는 언론계’ 지적도 나왔다. 언론은 언론의 잘못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논란과 이번 표절 논란 모두 보도량은 극히 드물었다. 감 교수는 “주류 언론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다”며 “‘허친스’ 보고서가 언론 구성원 간 활기찬 상호비판을 권고한 지 70년도 더 지났지만, 우리 언론은 여전히 상호 비판을 절대적으로 금기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허친스 보고서는 1947년 마국 언론자유위원회 발간물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다.

미국 언론계는 어떨까. 감 교수는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NCSU)에 방문교수로 있다. 그는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두 가지 예를 들었다. 2017년 뉴욕타임스는 WSJ 기자들의 제보로 WSJ가 트럼프 대통령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아 내부 반발에 부딪힌 상황을 전했다. 기자끼리도 당당히 상호 비판한다. 감 교수는 “대통령 기자회견 때 기자 질문은 단골 품평 대상”이라며 “‘NBC 뉴스’ 척 토드 기자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애국자라고 생각하느냐’고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한 질문에 ‘디애틀랜틱’의 필립 범프 기자는 ‘what the fuck’이라는 비속어까지 써가며 혹독히 비판했다”고 했다.

감 교수도 언론 비판이 마냥 편하지 않다. 그의 지인들도 유력 언론사를 정면 비판한 그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명백한 표절 사건을 고발하는 데에도 눈치를 본다면, 훨씬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께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며 “대학 교수의 신분 보장 특권에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눈치 보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분야의 전문가라도 자기 분야 벗어나면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 교수, 그것도 전자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무식을 드러낼 위험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며 “멍석이 깔렸으니, 이제는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 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유명 통계학자이자 저술가인 나심 탈레브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온갖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만, 나심 탈레브가 말했듯 구조적인 문제만 탓하고 있으면 망하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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