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의 장애인 폐쇄자막 속기 노동자 가운데 방송사 직원은 1명도 없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해 받은 방송사 폐쇄자막 속기업체 계약 현황을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모두 폐쇄자막을 속기 외주업체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쇄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방송의 음성을 문자로 내보내는 서비스다. 모든 시청자에게 보이는 일반 자막과 달리 시청자가 공개 설정을 할 경우에만 자막이 뜬다. 현재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은 장애인 폐쇄자막을 100% 의무로 송출해야 한다.

대다수의 방송사는 속기 업체에서 자막 작업을 해 방송사에 보내면 이후 방송사에서 자막을 방송에 붙여 송출하고 있다. 자막에 문제가 있으면 담당자가 속기업체에 연락을 해야 하는 등 직접적인 관리 감독이 어렵다.

▲ SBS 8뉴스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예시.
▲ SBS 8뉴스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예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심야시간대 방송의 경우 종종 방송사고가 나지만 곧바로 조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KT아현지사 화재 때는 사고 지역에 위치한 KBS 담당 속기업체가 KT망을 쓰고 있어 KBS 자막방송이 5시간 동안 중단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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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은 자막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폐쇄자막 대부분은 현장에서 속기사들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면서 ‘생방송’ 작업을 한다. 이 경우 속기 작업을 빠르게 해도 IPTV와 케이블 등 유료방송을 거치면 4~5초가량의 시간차가 발생하고 오탈자도 나온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는 “사전에 영상을 받아 작업하면 딜레이도 없고 오탈자도 사라질 수 있기에 방송사와 사전에 보내는 논의를 했으나 한국 방송 자체가 사전제작이 많지 않고 사전제작 된 콘텐츠도 유출 우려가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외주제작사가 저작권을 가진 경우도 많아 방송사만의 결단으로 이뤄지기 힘든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사에서 직접 고용해 콘텐츠 편집이 끝난 시점에 곧바로 작업을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간접 고용 구조는 저가 입찰 경쟁을 유발했고 현장 속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전문성 부재로도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방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폐쇄자막 속기 작업은 한글속기 국가기술자격 1~2급을 보유한 경우 하도록 했으나 일부 업체는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은 인력도 작업에 투입하고 있었다.

일부 업체의 경우 방송자막 속기 노동자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한 누리꾼은 ‘속기사의 현실’이라는 글에서 “속기사로 일하기 위해 2년여 간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합니다. 200만 원이 넘는 기계도 사야 하죠”라며 “학원 원장님에게 잘 보여야 여기저기 소개해 주고, 학원 원장님은 학생을 자막방송에 먼저 추천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과거 자막방송 속기업체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처음 듣는 말을 쓰기 때문에 사투리나 전문 용어가 나오면 바로 알아듣고 치기 힘들다”며 “고숙련자들도 있긴 하지만 속기업체에서 방송자막에 신규 인력을 중심으로 투입한다. 처우가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거나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검찰 등 관공서로 이직을 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속기업계 관계자는 “단가 문제가 있다. 업체들이 가격을 낮춰서 경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사에서 충분한 비용을 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의 경우 정부에서 폐쇄자막 등 장애인방송에 예산 10%를 지원하지만 방송사들은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는 “점검 결과 일부 자격증 무보유자의 작업이 확인돼 개선을 요구한 상태며 다른 문제들도 인지하고 논의하고 있지만 방송사와 업체 간 계약 전반에 개입할 수는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자막의 질을 측정하는 지수 개발을 시작했는데 고용 구조 등도 함께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훈 의원은 “법적 의무규정인 폐쇄자막방송은 상시지속업무임에도 9개 방송사가 모두 외주화를 고수 중”이라며 “차별해소와 장애인들의 권리 개선을 위해 정규직 전환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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