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 물길이 열렸다. 여야 4당 원내대표 합의안이 각 당 의원총회에서 추인되면서 선거제 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절차가 사실상 시작됐다. 4당 합의를 ‘친문 총선연대’라 비난한 자유한국당은 향후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고 장외투쟁을 이어갈 방침이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는 23일 오후 정개특위 간사들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오전 4당 의원총회에서 합의안 최종 추인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정개특위의 시간인 것 같다”며 “4당 원내대표들 합의에 기초해서 25일 이내에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 위원장이 24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국회의장이 상임위에 법안을 회부하면, 정개특위 위원 11명(5분의3) 이상 찬성으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 있다. 정개특위 위원 18명 중 여야 4당 소속 위원은 12명, 자유한국당 소속은 6명이다. 변수로 지목돼 온 바른미래당의 경우 정개특위 소속 위원(김동철·김성식)들은 패스트트랙 찬성 입장으로 알려졌다.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개특위 간사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성식 바른미래당 간사가 모여 앉아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개특위 간사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성식 바른미래당 간사가 모여 앉아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패스트트랙으로 의결된 안건은 각각 소관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60일 이내 등 최대 330일의 심의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각 단계에서 심사를 마치지 못해도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여야 합의 등으로 심의 기간을 180일까지 단축할 수 있지만 한국당 반발 등에 비춰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심 위원장은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개시 절차 자체에 지나치게 과잉 대응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법이 보장한 입법 절차이고 국회 내에서 정책을 중심으로 한 공조 연대는 일상적인데 ‘입법 쿠데타’니 ‘국민 겁박’이니, 20대 국회를 보이콧하겠다는 건 지나치게 무모한 대응”이라고 비판하며 “이후 심의 과정에서 한국당이 참여한 합의안이 나오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간사 회동 자리를 먼저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연대’가 선거제도를 패스트트랙에 태운다고 하면 정개특위는 없다”며 “국회의원직,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의회 폭거에 맞서겠다”고 말했다.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는 “의회 민주주의가 말살되는 상황에서 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자유한국당이 23일 오후 의원총회를 진행하는 동안 국회에 놓인 현수막과 손팻말들. 사진=노지민 기자
▲ 자유한국당이 23일 오후 의원총회를 진행하는 동안 국회에 놓인 현수막과 손팻말들. 사진=노지민 기자

한국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이어 청와대 앞에서도 패스트트랙 규탄 집회를 가졌다. 25일까지 국회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27일 장외투쟁에 동력을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여야 4당 패스트트랙 합의를 ‘좌파독재 플랜’이라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한편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 합의안에 담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경우 사개특위 소속 바른미래당 의원들 선택이 주목된다. 바른미래당 소속 위원인 권은희·오신환 의원은 앞서 당 지도부의 패스트트랙 표결 추진 등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찬성 12명, 반대 11명으로 패스트트랙 동참을 결정한 바른미래당은 분열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도부 사퇴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승민 의원이 “당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언주 의원은 이날 탈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향후 정계개편 구도에 따라 일부 의원들 셈법이 선거제 개혁안 심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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