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국은행이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349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살기 힘들다. 이를 두고 김흥수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3월6일자 칼럼에서 “숫자의 함정”을 언급했다.

김흥수 논설위원은 “국민소득에는 가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소득도 포함돼 있다. 이걸 인구로 나눈 값이 1인당 국민소득”이라며 “우리가 체감하는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지려면 기업·정부 몫을 뺀 ‘1인당 가계 총처분 가능 소득’(PGDI)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2017년 PGDI는 1만6573달러였다. 4인 가구 소득은 12만 달러가 아니라 6만6000달러쯤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3만1349달러 시대에 1만6573달러의 삶을 살고 있을까.

국회입법조사처가 22일 “우리나라 1인당 총국민소득이 2018년 3만 달러를 넘어섰으나 일반 국민들은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최근 20년간 총국민소득 대비 가계 및 기업소득 비중 추이와 현황을 공개했다. 그 결과 최근 20년간 대한민국의 총국민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 72.8%에서 2017년 61.3%로 11.5%p 줄어든 반면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13.9%에서 2017년 24.5%로 10.6%p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입법조사처는 “20년간 가계소득의 증가보다 기업소득의 증가가 더 빨랐다”고 분석했다. 기간별로 보면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이던 1998년~2007년 총국민소득이 연평균 8.1% 성장했으나 2008년~2017년 5.1%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1998년~2007년에는 연평균 가계소득이 6.5% 성장하고 기업소득이 13.6% 성장을 나타낸 반면 2008년~2017년에는 연평균 가계소득이 4.8% 성장하고 기업소득이 5.8% 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 대한민국 총 국민소득에서 각 경제주체의 소득 비중. 디자인=이우림 기자.
▲ 대한민국 총 국민소득에서 각 경제주체의 소득 비중. 디자인=이우림 기자.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998년 한국의 가계소득 비중은 72.8%로 OECD 24개국 평균(68.8%)보다 높았지만 2017년에는 61.3%로 OECD 평균(64.6%)보다 낮게 나타났다. 반면 한국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13.9%로 OECD 평균(17.7%)보다 낮았지만 2017년에는 24.5%로 OECD 평균(19.1%)보다 높게 나타났다. 20년 간 세계적 추세에 비해 가계는 덜 가져가고, 기업은 더 많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국가단위의 경제주체는 크게 가계·기업·정부로 나뉘는데, 해당 지표에선 국가에서 1년간 발생한 ‘부가가치’가 어떤 경제주체에게 얼마나 배분되느냐를 볼 수 있다. 한국은 가계와 기업 간 소득비중에 있어서 OECD에 비춰봤을 때 과도하게 기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이 임금을 올리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쌓는 방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가로막은 결과로 해석 가능하다. 지난해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30대 재벌 그룹 사내유보금이 약 883조원”이라고 주장했다.

입법조사처는 “1인당 총국민소득 3만 달러 체감을 위해선 가계 소득을 구성하는 임금,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재산소득 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으며, 기업소득의 가계환류와 가계의 안정적 소득 증대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고용상황 개선, 영세자영업자의 이익개선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교육 및 의료서비스의 복지제도 확충도 ‘3만 달러 체감’을 위한 실질적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 가지 해당 통계의 시사점은 OECD에 비해 낮은 정부소득비중이다. 2017년 기준 OECD에서 정부소득비중은 평균 16.3%인 반면 한국은 14.2%다. 고소득층과 재벌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어 정부소득비중을 늘린 뒤 이를 복지정책예산으로 바꿔 가계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해법이나 분석은 보수언론에서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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