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고 장자연 사건을 다룬 한겨레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보도를 청구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5일 언론조정신청서를 보면 방 사장 측은 “한겨레 보도는 금도를 벗어난 보도”, “신청인(방상훈)의 명예와 신용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상훈 사장이 문제 삼은 한겨레 보도는 두 가지다. 지난달 19일자 26면 김이택 칼럼(“검경을 심판대 올린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과 여성 200여명의 법원 앞 집회를 다룬 25일자 3면(“‘장자연 아닌, 가해자인 ‘방 사장 사건’”)이다.

김이택 한겨레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장씨가 마지막 남긴 글에서 성접대를 강요받은 사실을 증언하면서 ‘조선일보 방 사장’이란 표현을 콕 집어 명시했는데도 검경 모두 ‘방 사장’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며 “피해자는 성접대를 강요받은 사실을 폭로하며 목숨을 끊었는데 엉뚱하게 가해자는 제쳐두고 ‘방 사장’ 규명을 요구한 국회의원과 매니저 등만 기소했다. 두말할 것 없는 적반하장의 ‘왜곡 수사’”라고 비판했다.

여성들의 ‘방 사장 사건 진상규명 집회’를 다룬 한겨레 기사는 “(3월)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도로 앞에 200여명의 여성들이 모인 가운데 ‘방 사장 사건 진상규명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장자연씨 사망 사건이 피해자의 이름이 아닌 ‘가해자의 이름 ‘방 사장 사건’으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는 내용이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방 사장 측은 5일 언론조정신청서를 통해 “한겨레 보도를 접한 일반 독자라면 누구든지 신청인(방상훈)이 언론사의 사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장자연이라는 여성을 성폭행해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 뒤에 이뤄진 검경의 수사까지 무산시킬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대단히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됐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방 사장 측은 “장자연씨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는 신청인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것이 신청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수사 당국의 수사 결과와 사법부 판단을 통해 수차례 확인됐다”고 밝혔다.

방 사장 측은 또 “신청인은 2009년 당시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이유로 주식회사 조선일보의 대표이사로서 수사기관으로부터 관련 사건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며 “이후 본건 수사를 담당했던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부터 2009년 8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당시 불기소결정문에서 관련자들의 진술과 통화 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신청인과 장자연씨와의 연관성을 전혀 찾을 수 없고 장자연씨가 작성한 문서에 ‘조선일보 사장’이라는 기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청인이 장자연씨로부터 술접대를 받았다거나 성매매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방 사장 측은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3년 2월 신청인이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KBS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KBS 방송 내용은 방상훈이 장자연으로부터 술접대 내지 성 상납을 받은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관련 증언과 증거 등을 종합하면 방송에 적시된 사실은 허위임이 입증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면서 해당 의혹이 허위사실이라는 점 및 신청인의 명예훼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즉 자신과 ‘장자연 사건’이 무관하다는 사실이 수사기관 및 법원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

▲ 지난달 한겨레 19일자 26면 김이택 논설위원 칼럼.
▲ 지난달 한겨레 19일자 26면 김이택 논설위원 칼럼.
방 사장 측은 “한겨레는 칼럼에서 신청인이 장자연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임을 전제해 마치 신청인이 검경의 수사를 무산시킨 것 같은 왜곡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며 “기사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나온 거친 표현들을 여과 없이 인용해 ‘장자연 아닌, 가해자인 방 사장 사건’이라는 단정적인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신청인의 명예와 신용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청인이 언론사 사장이라는 공적 인물로서 언론에 더욱 거론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범’으로 내몰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통상의 범죄기사에서 범죄의 개연성이 상당히 인정되는 구속영장 발부의 단계에서도 피의자에게 유죄의 인상을 주지 않도록 각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피신청인들의 보도는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 사장 측은 “신청인은 마치 나약한 여성에게 성폭행을 가해 죽음으로 내몬 범죄자라는 오해를 받게 됐을 뿐 아니라 신문사 사장으로서의 지위를 남용해 검경의 수사를 무산시킨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게 됐다”며 “단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사건’ 조사가 현재 계속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청인에 대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 사건과 결부지어 낙인을 찍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 사장 측은 “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문제 삼은 두 기사 중 여성들의 집회 기사만 반론 보도를 청구했다. 방 사장 측은 장자연 사건 연루 의혹에 2009년 수사 당국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실과 법원이 2013년 허위라고 판단한 내용의 적시와 함께 “장자연 사건에 방상훈 사장이 관련을 맺고 있고 언론사 사장의 지위를 남용해 검·경의 수사를 무산시킨 것처럼 보도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반론 보도로 청구했다.

하지만 이순혁 한겨레 정치사회 부에디터는 22일 27면 칼럼을 통해 방 사장의 언론조정신청에 “언론사 사장의 지위를 정말로 남용하지 않으셨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며 자사가 지난 2일 보도한 ‘황제 조사’ 의혹을 언급했다.

한겨레는 이 보도에서 장자연 사건 관련 2009년 경찰이 방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면서 경찰서 조사실이 아닌 조선일보 사옥에서 방문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방문 조사에 조선일보 기자 2명이 배석하는 등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 한겨레 지난달 25일자 3면.
▲ 한겨레 지난달 25일자 3면.
이 부에디터는 “수사기관 조사 때 변호인이 아닌 제3자 배석 자체는 미성년 아동이나 성폭력 피해자 등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일로 알고 있다”며 “더욱이나 경찰 수사를 받는데 하필 경찰 출입기자들을 총괄하는 팀장(캡)과 부팀장(바이스)이 배석했다니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제가 이상한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부에디터는 여성들의 ‘방 사장 사건 진상규명 집회’에 대해서도 “집회 참가자들이 지목한 명백한 가해자는 방 사장님이 아니라 ‘조선일보 방씨 일가’였다”며 “한겨레 기사에 화가 나서 언론중재위를 활용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아드님(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과 대화를 좀 해보시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아들로 부족하면 동생(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만나보는 것도 좋았겠다”고 꼬집었다. 방 사장의 차남 방정오 전 대표와 동생 방용훈 사장은 장자연씨와 만난 적 있는 등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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