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KBS2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가수 알리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포크 가수 듀오이자 부부인 정태춘-박은옥에게 헌정하는 특집을 ‘불후의 명곡’에서 진행했다. 

한 주 뒤에 방송된 KBS1 ‘열린음악회’에서는 프로그램 전체가 정태춘-박은옥을 중심으로 한 미니 콘서트로 파격적 변신을 시도했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단순한 원로 가수가 아니라 때로는 ‘사전 검열 폐지 운동’으로 대표되는 표현의 자유 문제에, 앨범 ‘아, 대한민국…’을 비롯한 노래와 현장의 움직임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병폐와 맞서왔던 가수임을 생각하면 이 두 가수가 데뷔 40주년을 맞이해 KBS의 두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의미심장한 행보였다.

▲ KBS1 열린음악회 1238회.
▲ KBS1 열린음악회 1238회.

 

며칠 뒤 정태춘-박은옥의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기획에 참여 중인 지인을 만나 그 때 느꼈던 놀라움을 풀어냈다. 그리고 수많은 음악 프로그램 중에 ‘불후의 명곡’과 ‘열린음악회’ 출연을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른 의미로 내 머리를 띵하게 울렸다. “수많은 음악 프로그램들 중에서 두 개를 고른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는 두 프로그램을 빼면 선생님들이 나올 음악 프로그램이 없더라고요.”

 

분명 단순히 개수로 따지면 한국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은 수적으로는 적지 않다. 전통의 강자이자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가 시청률이 감소한 상황에서도 국내외의 10~20대 시청자를 상대로 꾸준히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10~20대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KBS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가요무대’, ‘국악 한마당’, ‘열린음악회’를 통해, EBS는 ‘EBS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고연령 시청자, 언더그라운드와 인디펜던트 영역, 소수 장르의 음악을 원하는 시청자를 함께 아우르려 한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올해부터 방송을 시작한 KBS ‘뮤직 셔플쇼 – 더 히트’, MBC ‘타겟 빌보드 – 킬 빌’, SBS ‘더 팬’ 등의 프로그램과 최근 성황리에 마무리된 엠넷 ‘고등래퍼3’를 비롯한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까지 고려한다면 한국 음악 프로그램들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취향을 지닌 시청자를 상대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 Mnet 고등래퍼3.
▲ Mnet 고등래퍼3.

하지만 이 단계에서 바로 한국 음악 프로그램이 종적으로 다양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분명 이전보다 한국 음악 프로그램이 아우르는 음악의 장르와 취향의 영역은 넓어졌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이 지니는 ‘형식’이다. 올해 런칭한 지상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비롯해, ‘고등래퍼’이나 곧 방송을 시작할 ‘프로듀스 X 101’ 같은 프로그램들은 모두 ‘경쟁’을 주된 포맷으로 삼는다. 심지어는 지난달 정태춘-박은옥 특집을 진행했던 ‘불후의 명곡’도 상대적인 강도는 약하지만 출연자들 사이의 경쟁 요소가 담겨 있다. 

또한 ‘뮤직뱅크’를 비롯한 순위제 프로그램은 적극적으로 순위 산정 공식에 ‘시청자 투표’와 같이 팬덤을 자극하는 요소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단순한 노래 인기 순위를 넘어 시청자들이 적극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경쟁’하는 시스템을 도입한지 오래다. 온전히 노래나 가수 자체에 집중하며 음악을 감상할 프로그램은 소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KBS춘천 ‘올댓뮤직’, 광주MBC ‘문화콘서트 난장’, ubc울산방송 ‘열린문화예술무대 뒤란’처럼 지역 방송국이 꾸준하게 음악 자체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따름이다. 음악 프로그램의 외견적 수나 다양성은 증가했지만, ‘경쟁’이나 ‘오디션’ 같이 부가적 요소를 떠나 음악 자체에 깊게 파고드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현실은 한국 음악이 K-POP 열풍으로 점차 해외에서도 한국 음악의 입지를 넓혀나가지만, 정작 전반적 장르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쉽게 특정 장르로 쏠리는 현상과 이어진다. 

정태춘-박은옥이 자신이 나올 음악 프로그램을 찾지 못한 것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음악을 계속 이야기하고 말하지만 정작 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발견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증하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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