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가 2차 가해를 멈춰달라 호소할 때 기자들도 가해자였다. 일부 기자들은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김씨 사생활 사진을 공유하면서 외모를 품평했다. 이들은 설현, 구하라 등 디지털성범죄 피해 연예인들도 희롱했다.

“김지은 사진 돈다는데... 갖고 계신 분~♡” 지난해 3월7일 오후 12시54분 한 기자들 익명 카카오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김씨가 JTBC에 나와 사건을 폭로한지 2일 후다. 작성자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소리질러!” “가즈아” “소송 내가 대신 걸릴게” 따위의 답만 달렸다. 작성자는 “정보방에 물어보고 싶으나... 미투니 2차피해니 겁나서 원”이라고도 적었다.

방 이름은 ‘시가 흐르는 문학의 밤(이하 문학방)’. 기자들 200여명이 익명으로 모여 각종 정보를 나누는 한 ‘정보 카톡방(정보방)’에서 파생된 소규모 비공개 카톡방이다. 정보방에선 성적인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 한 기자가 따로 만들었다. 이 방은 성희롱·2차 가해가 난무하는 방이 됐다. 성폭력 피해자 신상 유출과 외모 품평이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관련기사 : 기자 단체 카톡방에 “성관계 영상 좀”)

▲ 2018년 3월7일 익명의 기자들이 모인 한 익명 카카오톡방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씨의 신상이 유포됐고 외모품평도 이뤄졌다.
▲ 2018년 3월7일 익명의 기자들이 모인 한 익명 카카오톡방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씨의 신상이 유포됐고 외모품평도 이뤄졌다.

3월7일 오후 1시경 문학방에 김지은씨로 추정되는 사진이 올라왔다. 직후 외모품평이 시작됐다. “방송과 갭이 너무 심한데” “저게 그 사람이라고요?” 반응을 시작으로 “화장빨도 정도가 있지” “몸매가 좋네요” “사기꾼이네 사기꾼” 등의 답이 달렸다. 신체 부위를 거론한 성희롱도 오고 갔다.

합성사진 등 디지털성범죄 피해 연예인의 인권보호는 없었다. 가수 겸 배우 구하라씨가 전 연인 최종범씨에게서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을 받았단 사실이 알려진 지난해 10월, 이들은 서로 영상을 올려달라 요청했다. “영상이 떴다는데 드디어 사실인가요?” “영상을 구하라!” “어디어디!” “여러분을 믿습니다” 등이다.

▲ 촬영물 유포 협박 피해자인 연예인 구하라씨를두고 게임하듯 대화 중인 기자들. 대화 중 실제로 남녀 성관계 영상이 공유됐다. 해당 영상은 구씨와 무관한 영상이다.
▲ 촬영물 유포 협박 피해자인 연예인 구하라씨를두고 게임하듯 대화 중인 기자들. 대화 중 실제로 남녀 성관계 영상이 공유됐다. 해당 영상은 구씨와 무관한 영상이다.

대화 중 출처를 알 수 없는 한 남녀의 성관계 영상이 실제 공유됐다. 영상 요구는 한 달 뒤까지 이어졌다. 11월14일 다시 “구하라 동영상 구합니다” 톡이 올라오자 “진짜 안도네요 이거…”란 답이 달렸다. 어떤 이는 “짤(짧은 영상)이라도 좀”이라고 썼다.

연예인 설현씨는 지난해 3월 한 여성의 나체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조작사진이 무분별하게 유포돼 곤욕을 치뤘다. 인공지능 기술로 사진·영상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포르노’다. 구글 툴로 손쉽게 만들어 연예인·일반인을 막론하고 피해자가 많다.

“설현님 작품명을 말씀주시면 이 중에 아시는 분이 계실 듯 합니다” 디지털성범죄물은 문학방에서 ‘작품’이라 언급됐다. 참가자들은 게임하듯 설현 이름을 부르며 영상 공유를 요구했다. 결국 조작사진 링크가 공개되자 어떤 이는 “역시 인류 기술 발전은 포르노가 이끈다”고 적었다.

▲ 합성사진 피해자 설현씨도 대화방에서 자주 거론됐다.
▲ 합성사진 피해자 설현씨도 대화방에서 자주 거론됐다.

이밖에도 불법촬영물이 유포됐다는 연예인 소식이 들리면 그때마다 관련 링크를 공유했다. 가수 강인의 연인이라 지목됐던 여성의 영상, 모 걸그룹 연습생의 영상, 포르노사이트에 올라온 유명 BJ나 여성 연예인 관련 영상 등이다.

이들은 피해자 신상 유포나 촬영물 유포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김지은씨 사진을 공유할 땐 “이 방도 오픈되면 많이 다치는 거 아닌지” “우리 이 방 폭파하고 또 방 만들죠” 등의 대화를 나눴다. 설현씨 합성사진 유포자가 “올린다고 처벌되는 건 아니겠죠? 쫄리네요”라 적으니 “익명이라 괜찮다”는 답이 나왔다. 대화 참가자는 전체 50여명 중 10명 안팎이다.

이들에겐 성폭력특별법 14조와 정보통신망법 44조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성폭력특별법 14조2항은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제공하거나 공공연히 전시·상영한 자”를 처벌 대상으로 둔다. 정통법 44조의7도 “음란한 음향·화상이나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히 전시하는 정보” 유통 행위를 금지한다.

이와 관련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미투 운동 때 사법기관이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강력히 나왔듯 언론도 마찬가지다. 여성폭력 등 사안을 공정하게 취재·보도하기 위한 필수 전문성”이라며 “이 기자들은 그런 전문성을 심각히 결여했다. 입수한 사건 증거를 제대로 관리할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또 “성폭력을 포르노로 소비하는 등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고 희롱하는 수준이 심각하다. 다른 분야의 강간문화를 비판해온 집단이 스스로에 인지나 반성이 전혀 안된 점이 놀랍고 제대로 된 처벌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