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엔터의 협력사 대표 G의 생일이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G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손을 내 허리에 감았다. G의 손을 떼어낸 뒤 빠져나와 얼마간 시간을 때우며 앉아 있다 언니와 함께 가라오케를 나왔다. 내가 당한 첫 추행이었다. 말할 수 없이 화가 났다.”

“(언니는) 안 좋은 기분을 떨쳐내려 했던 것인지, 대표의 생일파티를 망치기 싫어서였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테이블 위에 올라가 춤까지 추는 언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놀라서 그런 언니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C가 언니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그러더니 무릎에 앉은 언니의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언니가 완강히 거부하자 C는 언니의 몸을 마구 만지기 시작했다.”

▲ 고(故) 장자연 사건 주요 증언자인 배우 윤지오 씨가 지난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고(故) 장자연 사건 주요 증언자인 배우 윤지오 씨가 지난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드라마 제작사이면서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대표와 계약 이야기가 오갔다. 회사에서 몇 차례 미팅하고 나이 지긋한 제작자가 식사 제안을 했다. 식사가 끝나자 제작자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잠자리 요구를 했다. 웃음기를 걷어내고 단칼에 거절했다. ‘아버지로서 혹시 따님이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 것 같냐?’라고 묻자 그는 화를 내며 ‘내 딸은 내 딸이고 너는 너다’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열을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배우 장자연씨 사망 10주기를 맞아 지난달 7일 장씨와 같은 소속사에 있던 동료 배우 윤지오가 쓴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에 쓴 내용이다. 자신이 성추행·성희롱을 당했고, 일상을 함께하는 언니가 성추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모든 일이 20대 때 윤지오가 겪은 일이다.

장자연씨와 관련해 몇 번의 증언을 한 뒤엔 더한 일도 겪었다. 분명히 약사 역할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대본에도 없는 술집 종업원 역할을 ‘한번 해봐’ ‘술 따르는 시늉해봐’ 등의 발언도 들었다. 신문사 주최 미인대회 전날, 주최 측에서 ‘미인대회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나오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증언했지만 얼굴이 공개되기 전이다.

얼굴을 공개한 뒤 삶은 더 어려워졌다. 윤씨는 자신의 생존을 알리려고 24시간 유튜브 방송도 하고, 어디든 경호원과 함께 다닌다. 불안한 일을 겪기도 했다. 깊은 잠에 들기도 어렵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윤씨를 만났다.

▲ 윤지오씨가 고 장자연씨 장례식에 참석해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 윤지오씨가 고 장자연씨 장례식에 참석해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나를 음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약자는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고 해명해야 할 위치에 선다. 윤씨는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과 기자님들 너무 고맙다. 하지만 2009년 참고인 조사를 받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례한 질문을 듣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윤씨는 2009년 당시엔 “성상납했죠 본인? 언제 어디서 했어요?” 등의 질문을, 최근에도 “카톡 내용의 진위를 말해달라. 조작인지 아닌지 설명해달라” “과격하게 나오시네요” 등의 질문과 질타를 들어야 했다. 다음은 윤씨와 나눈 일문일답.

- 최근 지오씨 증언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보나.

“스피커를 훼손하려는 행동,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라 속상하다. 책팔이 이런 말들. 책은 당연히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쓴다. 알다시피 신인작가는 인세도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굿즈를 만들려고 후원금을 모으는데 무턱대고 비난한다. 굿즈는 5대 강력범죄 피해사례에 해당하지 않아 보호시설을 지원받지 못하는 피해자와 제2의 피해자, 목격자, 증언자 등이 보호받을 시설, 경호인력, 생활환경을 개선할 비용, 경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기금 사용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할 거다.”

-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면?

“사람들은 제가 인터뷰에 많이 나오니까 그만큼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언론은 인터뷰를 많이 해도 많은 돈을 주지 않는다. 저는 한국에서 지출하는 돈이 훨씬 많다. 지금 머무는 곳이며 경호 인력까지 하루에 숨만 쉬어도 고정비용이 크다. 하루 90만원 이상은 그냥 나간다. 번 수익이 얼마 안 된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인터뷰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 김수민 작가는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증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내용을 공개했다.

“항상 제 말을 오해하고 화내고 제가 설명하면 그제야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었다. 김수민 작가는 SNS에서 알았다. 책을 출판하려는데 연예인 친구 중에는 책을 쓴 사람이 없다. 인쇄, 계약 등을 물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연결됐기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로 서로 힘든 이야기 나누다가 딱 한 번 만났다. 그가 논란을 자초해 제가 해명하는 꼴이 됐다. 저를 도우려면 확실히 돕던지 그게 아니라면 가해자들에 대해 파고들었으면 한다. 저는 가해자들을 지목하기 위한 증언자다. 저를 공격하는 건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뉴시스 ‘[기자수첩]윤지오, 장자연 사건의 절대 선인가’을 보고서 어땠나?

“이 기자수첩을 보고 어떤 언론을 신뢰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악의적으로 기자수첩을 썼던 그 사람은 제 경호원 번호를 알아내 전화해 제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해당기자에게 전화했더니 5분 후에 전화한다고 하고 아직도 연락을 안 했다. 사과할 거면 사과 하든지. 참 불쾌했다.”

▲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증인은 한 명뿐

- 장자연 사건 당시 증언해줄 다른 연예인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때 당시 증언해 줄 만한 친한 연예인 5명이었다. S씨, H씨, R씨, K씨, M씨. K씨는 특히 자연언니랑 통화를 1시간 넘게 한 기록이 있는데 끝까지 모른다고 했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갔다. 진행자 J씨와 한 방송국에서 일하는 K씨가 혹시 자연언니 이야기한 적 없냐고 물었다. J씨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 이 중에서 유일하게 언니 장례식에 온 사람은 R씨 밖에 없다. 나머지는 장례식에 안 왔다. 당연히 저보다 언니랑 더 친했던 사람들이고 언니가 서울에 집이 없으니까 H씨와 S씨 집에 가서 잘 정도로 친했다. 저보다는 많은 걸 알 것이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그 당시 그들도 신인이었다.”

- 장자연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언론사 관련해서만 자꾸 언급하는데, 리스트 속 인물은 30명이 넘는다. 그런데 저는 증언하기 어렵다. 언니가 성적인 일을 당하는 호텔이 어딘지 어떻게 아나. 그러면서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증거를 제시하려면 ○월○일 ○호에서 어떻게 만났으며 몇 분 동안 어떤 성행위가 있었고, 사진 및 동영상 다 있어야 하는 건데 제가 그걸 찍고 있을 수 있었겠나.”

- 책에능 지오씨에게 성 상납 요청한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누군가?

“N엔터테인먼트 D대표다. 정말 유명한 회사다. 그때 당시 ‘내 딸은 내 딸이고 너는 너다’라면서 ‘집 얻어 줄 테니까 나랑 만나자’고 했다. 녹취파일 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강하게 못 하고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정말 좋지 않다.”

-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계속 방송하고 있다.

“맞다. 지금까지 정말 많이 도와주신 분이다. (지난 15일) 이상호 기자님에게 들었는데 배우 정우성씨가 방송에 접속해 보셨다고 했다. 정우성 선배님은 영화 ‘증인’을 찍었다. 김향기씨도 주인공이었는데 제가 영화를 봤다고 글을 올렸더니 처음으로 제 SNS 글에 ‘좋아요’를 눌러줬다. 향기씨가 증인으로 나오는데 이름이 지우였다. 지우도 계속 외면되고 증언자로서 역할을 못 하고 사회 질타를 받는다. 전 조선일보 소속 기자 조씨 사건도 판사가 중간에 바뀌는데 영화도 똑같다. 바뀐 판사는 증인 이야기를 신빙성 있게 들어준다. 거기서 와닿았던 대사는 지우가 ‘엄마, 나는 증언을 하고 싶어. 증언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하는데 정우성씨가 지우에게 ‘내가 이제껏 봤던 증언자 중에 가장 훌륭한 증언자’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경호원분들이랑 같이 가서 봤는데 펑펑 울었다.”

▲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 사진=KBS ‘거리의만찬’ 방송화면 갈무리.

행복하게 살아낼 것

“이렇게 책을 발간해서 지난 일을 폭로한 이유는 저를 위해서다. 물론 언니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 하는 것도 있다. 앞으로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태어날 아들, 딸 앞에서 훗날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윤씨는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이같이 말했다.

윤씨는 피해자와 피해 사실을 목격한 제3자 등이 당당하고 가해자들이 부끄러운 삶을 살길 바란다. 윤씨는 지난달 29일 방영된 KBS ‘거리의 만찬’ 프로그램에서 “언론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저라는 증인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죄책감 좀 느꼈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무리해서 최대한 많이 인터뷰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자기 자신이다.

윤씨는 묵묵히 활동하기 위해 최근 정신감정을 받았다. 자신은 자살할 리가 없다는 취지의 일종의 공인 증명서를 받은 셈이다. 윤씨는 “같은 소속사였던 자연언니, 최진실, 정다빈, 유니 선배님 모두 자살로 결론 나고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저와 자연언니와 함께 놀던 김지훈씨도 자살했다. 장자연 사건을 파헤치던 형사님도 가슴팍 높이밖에 안 되는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고 토로했다.

윤씨는 “저는 외부로도 잘 안 나가고 그래서 사건으로 위장될 수는 없는데, 만약 나중에 어떤 일이 있어서 자살로 위장될까 봐 정신감정을 받았다. 전 살려는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다. 지금처럼 뭐든 열심히 하며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씨는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앞으로는 외신과 인터뷰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윤씨는 지난 17일 유튜브 채널 Asianboss와 인터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