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이 김기덕 영화감독 성추행과 김학의‧윤중천 사건도 다루고, 장자연 사건 관련도 방송했다. 여성들이 도구화·수단화되면서 인격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하나의 접대도구처럼 이용당했다는 걸 느꼈다.”

18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고소 남발 영화감독 김기덕 규탄 기자회견’에서 MBC ‘PD수첩’의 박건식 PD가 한 말이다.

PD수첩은 2018년 3월 ‘거장의 민낯’ 편에서 여배우들 증언으로 김기덕 감독의 성추행을 고발하고, 같은 해 8월 ‘거장의 민낯, 그 후’ 편을 방송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방송 이후 김 감독은 ‘PD수첩’ 제작진과 피해를 호소한 여성 배우를 각각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소했다. 그러나 모두 무혐의가 나왔다. 이후 김 감독은  ‘PD수첩’ 두 번째 에피소드에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또 김 감독은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에도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피해자와 ‘PD수첩’에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 2018년 3월 MBC 'PD수첩', '거장의 민낯'.
▲ 2018년 3월 MBC 'PD수첩', '거장의 민낯'.
박건식 PD는 “우리나라에서 김기덕 감독은 해외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분이고 가장 유명한 분이다. 여성 피해자들은 김 감독이 해외에서 수상할 때마다 더 초라해진다고 한다”며 “(피해자들이) ‘그때 내가 거부하지 않고 그냥 김 감독의 요구를 따랐어야 했나’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박 PD는 “피해 입은 분들은 점점 고통스러워하면서 영화계 떠나야 하고, 가해자가 승승장구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일부에서는 여성 인권이 많이 신장됐다고 말하는데 지난 한 해 취재해 본 결과 영화계, 언론계, 문화계, 검찰 등에서 빙하 아래 있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나. 이런 계기를 통해서 정의가 바로잡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도 “김 감독은 본인 작품의 여성 배우 폭행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보란 듯 일본의 유바리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작품이 초청되고,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며 “가해자와 가해자를 두둔하는 자들은 영화계에 남고, 피해자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니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성추행이나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대상으로 역고소하거나 피해자 지원단체에 고소하며 피해자를 위축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배 대표는 “지난해 고은 시인이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10억7000만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지난해 7월 1심 재판 중에 검찰 측 증인을 모해위증죄로 고소했지만,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며 “올해도 김기덕 감독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김학의 전 법무차관은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배 대표는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면서 자신의 범죄행위를 오히려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고 출구를 찾아간다. 출구전략으로 피해자의 행실을 근거로 불륜, 꽃뱀으로 몰아가고 피해자를 피의자 신분으로 이동시키고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역고소 방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실제로 피해 지원을 요청하는 지원단체에 역고소 피해지원이 늘어났다고도 전했다. 배 대표는 “여성가족부에서 성폭력 피해자 무료법률 구조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위기센터의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2017년 전체 구조 건수 195건 중의 22건이 역고소 피해 지원이며, 2018년 전체 구조 건수 380건 중의 81건이 역고소 피해지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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