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특파원의 외신 베끼기 논란을 두고 언론계에선 ‘드디어 관행이 사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언론은 통신사 보도를 어구만 바꿔 자사 기사로 내거나 타사 인터뷰조차 인용없이 쓰는 등 베껴쓰기 관행이 뿌리 깊다. 문제 보도를 언론인이 아닌 공학교수가 발견한 것부터 자성의 지점이다.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의 지난 12일 칼럼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는 6개 문단 중 5개 문단이 표절 의심을 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7일 사설 “Hidden Costs in the ‘Fight for $15’”의 6개 문단과 내용이 흡사했다. WSJ 전문 확인 결과, 칼럼 1문단이 WSJ 사설 2문단 내용과 거의 같았고 이후 5문단까지 논리 전개와 인용 자료도 WSJ 7문단까지 내용과 비슷했다. 칼럼의 60% 정도 분량이 WSJ 사설 골자와 겹쳤다.

▲ 4월12일 중앙일보 29면 '글로벌아이' 칼럼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
▲ 4월12일 중앙일보 29면 '글로벌아이' 칼럼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

중앙일보는 논란 직후 사과문을 올리고 칼럼을 삭제했다. 중앙일보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외신 상당 부분을 인용한 사실이 확인돼 삭제했다”며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리고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검증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은 지난 16일 심 특파원의 직무를 정지했고 그의 징계 처분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사안은 과거 칼럼 검증으로 확대됐다. 문제 칼럼을 처음 발견한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 교수가 중앙일보의 미국·영국 특파원 최근 글을 살펴본 결과 3개 글에서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무단 인용하거나 다른 기자의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 문장이 발견됐다. 감 교수는 조사 기간을 확대하면 문제 칼럼이 더 있을 것이라 시사했다.

기사 베끼기 관행은 한국 언론의 오랜 문제다. 가장 흔한 게 통신기사 무단전재다. 통신사 기사 일부 표현만 수정한 채 자사 기자 바이라인을 붙여 기사를 내보낸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올리는 매체도 있다. 통신사 사진을 출처 없이 게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신문윤리위원회 규제 대상이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은 언론 윤리를 총체적으로 담은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채택했다. 신문윤리위는 이를 감시하는 자율규제기구다. 실천요강 8조 ‘출판물의 전재와 인용’은 표절을 엄격히 금지한다. △통신기사 출처명시 뿐만 아니라 △보도 표절 금지 △타 출판물 표절 금지 △시청각자료 저작권 보호 등을 정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더디다. 언론사(통신사 포함) 보도를 표절·도용해 윤리위 규제를 받은 사례는 2017년 174건, 2018년 75건이다. 이 중 57%(141건) 가량이 통신기사 무단전재·도용이고 약 15%(37건)가 통신사 외 매체 표절 사례다. 타사 단독보도를 자사가 취재한 것처럼 인용없이 그대로 보도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2017년 인터넷신문위원회 기사 심의 결과 전체 3378건 중 표절금지 위반만 1480건(43.8%)에 달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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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저작물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 기자도 있다. ‘청와대 정부’ 저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난해 프레시안을 통해 조선일보 표절을 비판했다. 박 교장이 자료를 손수 취합해 통계낸 자료를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이 출처없이 칼럼에 그대로 인용했다. 청와대 비서실·국가안보실 등 정원 분석, 특정 보도, 국회 회의록 발언 조사 통계 등이다.

해외 언론은 표절을 얼마나 심각하게 볼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사(NPR) 가이드라인은 귀감이다. 보도 윤리 중 ‘출처 명기(Attribution)’ 관련 가이드라인만 따로 관리할 정도다. ‘정직(Honesty)’ 부분에선 “표절은 도둑질”이라며 “출처 표시 없이는 어떤 내용도 인용될 수 없다”고 밝힌다. ‘공정(Fairness)’ 면에선 “다른 동료의 보도를 쓸 땐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면서 “과도한 인용은 효과적인 표절”이라거나 인용 자료의 표현을 과도히 고치지도 말라고 정한다.

2015년 10월 표절 사건이 터졌을 때 NPR은 문제 기자(Brian Wise)의 기사 10건을 전수 조사해 어구·문장 단위 표절까지 잡아냈다. NPR은 자성의 의미로 표절 기사 10건을 사과문과 함께 전체 게재하고 표절 문구마다 원문 링크를 달아 모든 독자가 볼 수 있게 온라인에 공개했다. 협력사 직원이었던 기자는 논란 후 회사를 사직했다.

한 외신기자는 “미국도 표절 문제가 있지만,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언론사 기준으로 보면 한국만큼 베끼기 관행은 심하지 않고 사상이 드러나는 칼럼을 베끼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며 “미국은 언론인 잘못에 매섭게 기사를 쓰는데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한국 언론의 문화를 보고 매우 놀랐다. 지침·교육 차이가 아니라 문화 차이가 큰 원인같다”고 평했다.

▲ 2015년 10월29일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 NPR이 협력사 기자의 표절 사건 경위를 밝히고 표절 내용을 세세히 공개한 웹페이지 갈무리.
▲ 2015년 10월29일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 NPR이 협력사 기자의 표절 사건 경위를 밝히고 표절 내용을 세세히 공개한 웹페이지 갈무리.

감시·규제가 헐거운 한국엔 ‘사설 표절’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호남일보와 아시아글로브는 2017년 5월, 6월에 ‘연합시론’을 거의 그대로 베껴 쓴 사설을 실어 신문윤리위 경고를 받았다. 2014년에도 4건, 2015년 6건, 2016년 2건이 더 있다. 윤리위는 “사설 표절은 타사의 저작권 침해 차원을 넘어 해당 신문의 자기부정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며 경고했다.

이번 중앙일보 특파원 사례도 신문윤리위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유규하 심의실장은 “회원사 지면에 실린 모든 보도가 윤리심의 대상”이라며 “표절 여부는 구체적 내용에 따라 다를 테지만 원론적으로 윤리위는 표절을 심각한 문제라고 보며 인용한 내용의 출처를 밝히는 원칙을 심의기준으로 둔다”고 말했다.

학계처럼 언론계도 기사·저작물 표절 기준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보도 모니터링을 할 때 문장 하나 검색했는데 다양한 언론사가 동시에 검색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디까지 표절이고 아닌지 혼란스럽다”며 “새로운 기준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신문윤리위도 원칙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도 밝혔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인 스스로의 자성과 트래픽만 좇는 언론계 구조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언론이 기사량, 클릭수로 경쟁하는 경영 구조가 근본 문제로 이에 대한 해결 없인 베껴쓰기 관행 개선은 어렵다”면서 “자신의 이름과 직업윤리를 걸고 일하는 기자들도 ‘구조적인 문제’라 체념할 게 아니라 전면에 나서 문제 해결에 앞장 서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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