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가 강원 산불 재난 보도를 처절히 반성하는 글을 썼다.

KBS 사회부 박영민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보에 “뻔한 소리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반성문을 올렸다.

박 기자는 “현장 상황을 간략하게 적은 원고를 올리고 MNG(Mobile News Gathering) 연결을 준비했다. 그 사이에도 불길은 쉴새없이 시내 쪽으로 향했다. 스튜디오에서 현장에 있는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머릿속에 새하얘졌다”고 털어놨다.

박 기자는 “속초로 출발하기 전에 선배는 보이는 대로 현장 상황을 설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보이는 건 불과 연기뿐이었다”며 “결국 이곳이 어디인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불이 시내 쪽으로 번지고 있다는 수준의 ‘뻔한 소리’만 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박 기자는 “당초 계획과 달리 특보는 동이 뜰 때까지 계속됐고, 현장에서의 뻔한 소리는 계속 방송으로 전달됐다. 불이 난 곳을 찾아 장소만 옮겼을 뿐 정보의 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첫 중계 이후 12시간 동안 속초 현지 상황을 전달하고 나서야 교대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제야 각종 포털과 SNS에 재난주관방송사인 KBS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눈에 들어왔다”며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현재 교통이 차단된 도로는 어디인지 신속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비판은, 뻔한 소리를 했다는 자책감에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다만 박 기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방송했을 때의 위험도 다시 한번 배웠다고 밝혔다. 사내로 번진 불길이 LNG 가스충전소와 주유소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 타사에서 가스충전소가 폭발했다고 보도했지만 박 기자는 “소방에서 공식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 연결 순서가 다가왔다. 고민 끝에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는 수준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만 전달해야 한다는 ‘전원구조’ 오보의 교훈은 확실한 기준점이 됐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끝으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재난 관련 정보를 적극 알려서 피해 최소화한다’는 재난방송 목적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저 스스로 준비도 연습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박 기자의 반성문은 국가재난주관방송사의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개인의 잘못을 탓하는 듯 보이지만 그만큼 재난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비판으로도 풀이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노보에서 재난방송 전환 시기를 놓쳐 실기했다고 지적했다. 재난 당국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밤 9시30분까지 대피한 주민이 542명에 이르렀다. 9시44분께 전국 총동원령 소방대응 3단계가 발령됐을 때 최소한 9시 뉴스에 이어 밤 10시부터는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재난방송 특보 체제로 돌입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KBS 재난방송메뉴얼에 따르면 재난 뉴스를 반영하고 자막과 스크롤을 넣는 1단계, 스크롤 방송과 뉴스특보를 하는 2단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전면 재난 특보로 전환하는 3단계로 돼 있다. 매뉴얼은 위중할 때 곧바로 3단계 방송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이에 보도본부의 판단이 신속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KBS 본부는 “리더의 개인적 자질 이외에 살펴봐야 할 것이 정보다. 산불 재난문자가 발송된 것은 저녁 7시51분이다. 하지만 KBS 춘천 강릉방송국이 재난 자막을 방송한 것은 1시간 뒤인 저녁 8시53분”이었다며 “초기 정보 전달이 피해예방의 관건이건만 KBS의 재난방송시스템은 재난정보와 전혀 연동돼 있지 않다. 기자의 개인적 취재 역량 혹은 연합뉴스 같은 타 매체의 보도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KBS본부는  “고성 산불 1보 단신은 저녁 8시02분, 그리고 두번째 텍스트 단신은 밤 10시2분에 작성됐다. 산불이 확산하고 수백명의 주민이 대피하고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그 긴박한 2시간 동안 KBS에는 기사가 없었다”며 “그 사이 유일한 기사는 9시 뉴스 연결용 원고 뿐, 보도의 기본인 정제된 텍스트 기사를 작성하지 못했고, 이후에 작성된 기사도 다양한 정보를 담지 못하거나 한참 뒤쳐진 팩트가 담겼다 정보의 부족과 효율적 업무 분담의 실패, 컨트롤 타워의 리더십 부재 등 여러 원인이 복합으로 얽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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