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누적 관객 2억명이 넘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지난 1년 동안 영화를 1회이상 관람했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25%에 불과하다. 비장애인은 65%가 한 번 이상 영화를 봤다.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는 한 달에 한두 번 꼴, 그나마 사람들이 영화관을 잘 찾지 않는 시간대에 상영된다. 날마다 늘어나는 무인주문기(키오스크)는 비장애 성인 눈높이에 맞춰져 휠체어 탄 장애인은 손도 안 닿는다.

한국영화 100주년과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맞아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한국장애인총연합회, 한국농아인협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발의를 밝혔다. 정의당 김종대·심상정·여영국·윤소하·이정미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성수·소병훈·이철희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추혜선 의원은 “재작년(2017년) 장애인들이 영화사업자들을 상대로 화면해설과 한글자막 등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장애인 당사자의 ‘평등하게 영화 볼 권리’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영화사업자들은 편의를 제공하기는커녕 의무조항이 아니라며 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며 “(장애인 단체들과)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 실생활과 맞닿은 부분에서 벽을 허물려고 장애인 영화 관람 편의제공을 의무화하는 영화·비디오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고 했다.

▲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애인 영화관람환경개선을 위한 법안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상해설과 수어통역이 함께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애인 영화관람환경개선을 위한 법안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상해설과 수어통역이 함께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영화·비디오법 개정안은 영화상영관 경영자가 일정 비율 이상 한국수어·자막·화면해설 제공 한국영화 상영하고 휠체어·점자안내책자·보청기 등 관련 장비·기기를 갖춰야 하며, 영화진흥위원회는 장애인을 위한 영화 상영 경비를 영화발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의무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경우 장애인 정보통신·의사소통 편의제공의무 대상에 영화·비디오물 등 영상물 제작업자 및 배급업자와 영화상영관 경영자 의무를 명시한 개정안과 무인화 기기를 설치할 때 장애인 접근·이용이 가능한 위치와공간을 확보하고 보조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개정안 등 2건이 발의됐다.

강재희 한국농아인협회 상임이사는 “2008년 12월 국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30조는 문화생활·여가·스포츠 등 다양한 곳에 장애인이 참여할 권리를 담고, 장애인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합당한 조치가 취해졌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한 뒤 “여전히 장애인들은 한국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없다. 장애인도 영화로 대리만족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우리나라 민간 영역에서의 키오스크 보급이 너무 빨라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햄버거 하나도 조력자 없으면 사먹지 못한다. 인천공항도 키오스크가 많아 개선을 요구했더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얘기해 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개선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작년에도 이미 다른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고 국회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모든 의원이 관심을 가져 무인단말기로 장애인이 또 다른 차별을 겪으면서 살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장애인 영화관람권 확보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보려고 했던 영화는 청각장애인이 겪는 인권침해 실태와 폭력을 고발한 ‘도가니’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다가오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일상 속 차별과 배제에 세밀한 논의의 장이 열리기 바라고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이 두텁게 보장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정부에 “장애인의 날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장애인복지시설 ‘체험’ 대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진짜 정책’을 만들고, 당사자가 요구가 무엇인지 호소부터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추 의원은 “오늘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끄러웠다. 제가 기자회견을 할 때 항상 수어통역을 함께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면서 마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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