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보석이 결정돼 풀려나오자 박근혜 전 대통령도 풀려나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에서 나온다. 비교 잣대와 원칙이 타당한가 따져보지도 않고 석방 조차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데 언론과 정치권이 부채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김경수 지사의 주거지와 접견 대상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경남 창원 주거지에 머물러야 하고, 드루킹 일당 등 증인과 만나거나 연락해서는 안 된다. 김 지사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도정공백이 우려된다며 보석을 청구했다.

김 지사 보석이 결정되자마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형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형집행정지 사유로 유 변호사는 “불에 덴 것 같은 통증,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과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은 형평성 논리를 내세워 김 지사도 풀려났으니 박 전 대통령도 풀려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거나 그런 주장을 소개했다.

이가영 중앙일보 사회부 차장은 18일자 33면 칼럼 ‘[노트북을 열며] 기결수 박근혜와 보석 허가된 김경수’에서 “개인적으로 구속된 피의자라도 기소된 뒤엔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해야 한다는 원칙에 찬성한다. 김 지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라면 보석 허가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다만 김 지사의 보석을 바라보는 우려의 눈길이 있다는 건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이 차장은 그래놓고 뒷부분에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신청사실을 들어 “김 지사의 보석 결정과 맞물려 자칫 불공정 시비나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의 불씨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의 원칙’이 지켜지길 기대한다”고 주장을 폈다.

김 지사를 풀어주고 박 전 대통령을 안 풀어주면 불공정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KBS는 17일 뉴스에서 “김경수 지사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소개했다. YTN은 17~18일 뉴스 ‘김경수 보석에 野 반발...朴 석방론 재점화’에서 “김 지사의 보석 결정을 계기로 자유한국당 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18일자 1면 ‘김경수 보석 도지사 복귀’ 기사에서도 “김경수 지사의 보석 석방 소식이 알려지자 몰려든 지지자들은 ‘김경수’를 연호하며 박수를 쳤고, 다른 한편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김경수만 풀어주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썼다.

김경수 지사의 석방과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한 기사에 안에 뒤섞어놓고 한쪽이 됐으니 다른쪽도 돼야 한다는 연상효과를 주는 글들이다.

▲ 17일 방송된 YTN 뉴스. 사진=뉴스영상 갈무리
▲ 17일 방송된 YTN 뉴스. 사진=뉴스영상 갈무리
그러자 자유한국당 수뇌부들은 18일 대놓고 김경수와 박근혜의 형평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김경수 도지사가 보석으로 석방됐다”며 “‘친문 무죄, 반문 유죄’ 이런 이 정권의 사법 방정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황 대표는 “증거인멸 능력도, 도주 우려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은 아무리 고령의 질병이 있어도 감옥에 가둬놨다”며 “그런데도 살아있는 권력에게는 어떻게 이렇게 너그러울 수가 있나”라고 문제삼았다.

같은 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도 김 지사 석방에는 “국민의 사법부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 그러한 걱정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신청에 대해선 “요건 충족 뿐 아니라 국가발전과 국민통합 시각에서 이번 신청 건을 합리적으로 심의해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지사의 보석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똑같은 잣대로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나온다. 석방조차 거래의 대상처럼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변호사 출신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 신청서의 사유를 보면 ‘칼로 사를 베는 듯한 통증’과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요구로 형집행정지가 과연 용인될 수 있는지 법조인들 어느 누구도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변호사가 의뢰인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한 것인지 의문이며,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방식 문제제기로 모든 수감자들을 다 석방하자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이 의원은 “복귀를 노리는 친박세력들이 기획한 정치적 액션이며, 이 타이밍에 논란을 만들어내려 한 것에 자유한국당과 언론이 이를 받아들인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경수엔 관대하고 박근혜는 감옥에 가뒀다며 형평성을 제기한 황교안 대표의 주장을 두고 “공안검사의 법률가 색채를 못버린 줄 알았더니 법률가로써도 형집행정지가 어떤 때에 가능한지 모르고서 하는 얘기인지 의문”이라며 “무능한 것인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등지고서라도 필요하면 주장을 하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