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한텐 의무 다하라며 나라는 국민생명 지키는 의무를 왜 다하지 않느냐.” 세월호 참사 이틀이 지난 2014년 4월18일자 조선일보는 “하나뿐인 내 새끼 살려주세요…대한민국 父母 모두 울었다”란 기사에서 희생자 가족의 울분을 전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엔 진보-보수 성향 가릴 것 없이 모든 신문이 일제히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전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했다.

5년이 흐른 지금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이념과 무관한 사안이지만 진보-보수 대립의 극단에 선 이슈가 됐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책임자 처벌 역시 미흡한 실정이지만 한쪽에선 이런 희생자 가족을 비난하는 양상이다.

황희정(한양대 정치외교학과)이 지난해 발표한 ‘양극화된 한국 정치담론과 사회갈등에 관한 분석-세월호 참사 언론보도를 중심으로’란 논문에서 갈등의 주요 원인이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보도라고 지적했다. 한쪽은 ‘대통령 책임’을 강조하고 다른 쪽은 ‘대통령 수호’를 위한 기사를 쏟아내며 언론사간 대립을 극단으로 보여준 사건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해당 연구는 2014년 4월17일부터 2015년 4월15일까지 참사 직후 1년치 진보(경향신문·한겨레)와 보수(동아·조선일보) 성향의 신문기사를 대상으로 했다.

참사 직후에 거의 없었던 시각차

세월호 참사 직후엔 신문사 간 시각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보-보수 언론은 모두 희생자 가족 아픔에 공감하며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우리는 지금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4월21일)고 했고 한겨레는 “자괴감에 빠진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4월20일)고 했다. 조선일보는 4월23일 피해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의미의 노란리본달기 운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 2014년 4월18일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 2014년 4월18일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 2014년 4월18일 조선일보 3면 톱기사
▲ 2014년 4월18일 조선일보 3면 톱기사

실제 여론도 그랬다.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인 영남지역과 그렇지 않은 호남지역 모두 분향소 조문할 의향이 있는 국민이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13일 만인 4월29일 당시 대통령 박근혜씨가 사과문을 발표했을 때도 신문들은 정부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사과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보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안전해지겠구나’라고 느끼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4월30일)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보수언론 모두 사과의 형식과 내용이 미흡하다고 지적했고 진보언론은 이에 더해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공감능력 부재까지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과 당일 “국민 앞에 서지 않고 국무회의 발언을 빌린 ‘간접사과’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쟁 이슈로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여권에서 희생자 가족을 향한 막말이 나왔지만 신문들은 일제히 이를 비판했다. 참사 한달 후인 5월16일 박근혜씨가 희생자 가족 대표단의 면담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도 진보-보수 신문 모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시각차가 발생했다는 게 보도 분석 결과다.

보수언론은 화살을 청해진해운에 돌렸다. 동아일보는 선거 약 1주일 전인 5월28일 “당국은 명예를 걸고 유병언 전 회장과 그 일가를 잡아 법의 엄중함을 보여달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가개조 기회를 달라”고 한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인식을 같이했다. 참사의 해결사로서 대통령과 정부를 말했다.

반면 진보언론은 대통령의 무능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6월1일 “박 대통령이 보여준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희생자들, 나아가 국민과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공감능력’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은 “참사에서 비롯한 국민의 슬픔과 분노를 표로 말해야 한다”고 정부여당에 맞섰다.

정치권은 세월호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를 준비했지만 유권자 투표결과를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세월호가 판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호·신화용의 연구(한국정치학회보 48집)를 보면 “시민들은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정부·여당(새누리당)으로만 향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선 야당에 더 많은 비호감을 누증했다”고 지적했다. 이현우의 연구(한국정치학회보 49집)을 보면 “투표에서 세월호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54.8%였으며 이 중 58.7%는 오히려 기존 지지정당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고 응답했다.

선거 끝나고 진보-보수 갈등 고착화

선거가 끝나고 보수언론은 참사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아가자는 보도와 청해진 해운 쪽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보도를 이어갔다. 둘다 진보언론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논조였다. 진보언론은 지방선거 이전과 이후 모두 희생자의 아픔을 전하고 참사 원인이 당시 권력에 있다는 논조였다.

▲ 2014년 9월2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4년 9월2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동아일보는 6월9일 “세월호의 슬픔 딛고 경제시계 돌게 해야”라는 기사에서 소비심리 위축 등을 우려했는데 앞선 논문에선 이를 ‘합리적인 주장’으로 평가했다. 다만 보수언론이 이를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비판하는 근거로 이어갔다는 점에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해당 논문은 보수언론이 청해진해운 쪽을 겨누는 기사를 ‘책임 회피’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6월18일 “청해진해운의 비리·부실경영이 사고원인”이라며 “촛불 세력은 국민적 슬픔을 반(反)정부 에너지로 전환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논문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타난 진영논리가 선거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고 고착화했다”며 “진영논리 중심에 있는 대통령 수호입장과 심판입장이 대립구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참사 발생 3개월이 지난 7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수사권·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했지만 정부여당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당은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뺀 특별법, 야당은 수사권만 있는 특별법을 주장하며 대립하는 가운데 7·30 재보선에서 여야는 ‘민생경제 활성화’와 ‘세월호 심판론’으로 맞섰다.

진보-보수 언론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차 역시 그대로 이어졌다. 선거 하루 전인 7월29일 한겨레는 사설에서 “(7·30 재보선은) 6·4 지방선거의 연장전 성격”이라며 “여야 모두 환골탈태를 약속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같은날 사설에서 “세월호 침몰과 연관된 지역경제는 크게 망가졌고 전국적으로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국민생활이 우울해졌다”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란 책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책임규명마저도 양당 대립의 틀 속으로 포섭됐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미완의 합의로 탄생했지만 진보-보수 갈등은 더 커졌다. 세월호 참사 후속대응에서 양당정치는 가장 큰 문제였던 이념갈등과 정파대립을 여실히 드러났고, 언론은 이를 완화하기 보단 확대재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 세월호 5주기인 2019년 4월16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1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면에는 세월호 소식이 없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1면에는 세월호 소식이 비중있게 담겼다.
▲ 세월호 5주기인 2019년 4월16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1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면에는 세월호 소식이 없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1면에는 세월호 소식이 비중있게 담겼다.

연구에 따르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진보언론은 박근혜 정부가 진상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보수언론은 세월호 참사 자체를 다루기 않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난 2019년 4월16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면에 세월호 참사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면에선 세월호 참사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가들 역시 언론이 대립을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세월호가 국가적 재난이었는데도 2014년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보수 프레임이 작동했듯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대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며 15일과 16일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의원이 한 막말을 예로 들었다. 최 교수는 “갈등이 제도권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극단적 양극화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도 정치일정 중심으로 움직이거나 정부측 인사와 같은 정보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언론 자체가 가진 정치적 경향성을 보탰다”며 “최근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포털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특정인을 증오하고 자기편에게 좋은 말만 믿는구나’하는 확신이 생기니 언론도 이에 영향을 받아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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