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자 조선일보 지면이 화제였다. 이날 조선일보는 기존 36면 신문을 감싼 래핑(Wrapping) 지면을 이례적으로 선보였다. 래핑 지면이 독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팩트’였다.

조선일보는 “세상이 속도전으로 뉴스를 쏟아낼 때 우리는 팩트를 찾아 나선다. 가짜뉴스가 과학의 탈을 쓰고 왔을 때 우리는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면서 “지금 진실에 눈감으면 오늘보다 나아질 수 없다. 진실은 팩트에 있다. 팩트가 있는 곳에 조선일보가 있다”고 했다.

래핑 지면 사진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자사 기자의 모습. ‘조선일보 기자는 현장에서 팩트를 찾는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한 사진이었다.

▲ 조선일보 8일자 래핑(Wrapping) 지면 1·2면. 이날 조선일보가 강조한 것은 팩트였다.
▲ 조선일보 8일자 래핑(Wrapping) 지면 1·2면. 이날 조선일보가 강조한 것은 팩트였다.
시작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지난 12일자 사보를 보면 방 사장이 “가짜 뉴스가 넘쳐난다. 현장에서 진실을 전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보자”고 주문하자 조선일보 기자들이 움직였다.

편집부 팩트팀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내년 100주년 방향을 보여주는 문구를 쓰며 토씨 하나하나까지 다듬었다.

조선일보 독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의지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누가 썼느냐”, “팩트로 똘똘 뭉친 기사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보여줬다”, “조선은 늘 꾸준히 혁신을 모색한다”, “속보 시대에 대응하는 조선일보의 전략과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줬다” 등 긍정 반응이 많았다고 사보는 전했다.

시도는 신선했지만 팩트가 있는 곳에 조선일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를 테면 전 국민이 오보인 걸 알고 있는 ‘현송월 총살’ 보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 조선일보 2013년 8월29일자 6면.
▲ 조선일보 2013년 8월29일자 6면.
조선일보는 2013년 8월29일자 6면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을 포함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명이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공개 총살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때 방남하면서 명백한 오보로 확인됐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도 지난해 2월 “2013년 현송월이 총살됐다고 오보했으나 아직까지 정정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보도다.

조선일보는 보도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단독]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온라인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현송월 총살’ 오보를 낸 안용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달 미디어오늘에 “(오보인 것은) 맞다. 보도에 언급된 다른 사람들은 처벌된 게 맞을 것”이라며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현송월 부분은 결과적으로 오보가 맞다”고 했다.

▲ 안용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13일자 칼럼.
▲ 안용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13일자 칼럼.
안 위원은 지난 13일 칼럼에서 연합뉴스TV의 방송 사고를 언급하며 “언론에 오보와 방송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확인을 거듭해도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것과 같은 상황도 발생한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방미 때 방명록에 ‘대한미국’이라고 썼다.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도 사람인 만큼 오보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오보에는 정정이 뒤따라야 한다. 안 위원은 ‘정정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 질문에 “현재까지 따로 뒤늦게 (정정)한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2면에서 “신문의 오·탈자나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을 찾아 바로잡아주시는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다”고 했다. “독자와 소통을 강화하고 더 정확하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12일자 사보)라는 것이다. 언론 신뢰는 눈앞 오보부터 바로잡을 때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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