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나치독일 지배를 받을 때다. 나치가 세계사적으로 최고의 현상금을 건 레지스탕스가 있었다. 투쟁 과정에서 아내가 순국했지만 나치가 패망할 때까지 최전선에서 싸웠다. 그가 목숨 걸고 투쟁할 때, 프랑스의 한 언론은 ‘국방헌금’을 모아 독일군에 바쳤다. 틈만 나면 독일군에 지원하라고 프랑스 청년을 선동했다. 숱한 청년이 개만도 못한 죽음을 맞았다. 그 순간에도 그 언론 사주는 제호까지 내리고 히틀러의 깃발을 인쇄해 가족과 호의호식했다. 나치가 물러나고도 자자손손 신문사를 세습하고 프랑스 정계의 향방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가문의 초등학생까지 자동차 기사에게 갑질을 할 정도로 부자다. 300억원이 넘는 현상금에 쫓기며 아내를 잃고 나치가 패망한 뒤 비명에 죽은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삶을 옳게 평가하자는 주장에 그 언론사는 도끼눈 부라리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어떤가, 이해할 수 있는가. 프랑스로 소개한 엽기적 사건은 짐작했겠지만 가상이다. 진실은 정반대다. 프랑스는 조금이라도 친나치 글을 쓴 언론인을 모두 처형했다. 심판을 주도한 주체는 좌파가 아니었다. 반역죄를 물은 쪽은 오히려 ‘위대한 프랑스’를 신봉하는 우파였다.

가상을 쓴 까닭도 독자는 넉넉히 헤아릴 성싶다. 그렇다. 앞에 소개한 이야기에서 프랑스를 한국으로, 나치독일을 일본제국으로만 바꾸면 고스란히 이 땅에서 생생하게 벌어진 실화다. 김원봉과 조선일보 방응모가 그 주인공이다.

명토박아 둔다. 나는 친일파 가문을 싸잡아 비판하지 않아왔다. 후손이 성찰하지 않아도 좋다. 침묵만 한다면 문제 제기할 뜻이 없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한국방송 이사장 이인호를 그의 임기 내내 비판한 까닭은 그가 친일한 조부를 비호하고 반민특위에도 살천스레 색깔을 칠해서였다. 심지어 그 뒤틀린 역사인식으로 국가기간방송의 방향을 감히 좌우하려 들었다.

▲ 왼쪽부터 방응모,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선일보 사주 일가. 사진=미디어오늘
▲ 왼쪽부터 방응모,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선일보 사주 일가. 사진=미디어오늘
같은 논리에서 나는 방상훈을 친일파 가문이라 비판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최근 벌이는 작태는 무장 가관이다. 김원봉 폄훼 기사와 칼럼을 끝없이 내보내고 있다. 독립운동한 자신의 부친을 두고 “간첩”을 들먹이는 ‘나경원 무리’에게 ‘니들 아빠는 그때 뭐하셨지?’ 물은 손혜원의 ‘품격’을 들먹이는 먹물들이 나는 정말 역겹다. ‘누가 대한민국 역사를 훼손하는가’ 묻는 강천석 논설고문에겐 조용히 그 물음을 되돌려주고 싶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탄핵당하고 4월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누가 내내 영웅화해왔는지 짚어볼 일이다.

조선일보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 경질론이 나온다’는 기사까지 실었다. 대체 ‘여권 내부’의 누가 쏙닥대는 걸까, 실소마저 나온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쓴 ‘여권 내부’가 신문사 내부 혹은 보훈처의 보신주의 관료가 아니길 바란다.

▲ 지난 4월13일 조선일보 26면에 실린 ‘강천석 칼럼’
▲ 지난 4월13일 조선일보 26면에 실린 ‘강천석 칼럼’
피우진은 독립운동과 호국, 민주화 유공자 세 부문을 균형 있게 바라보려는 최초의 국가보훈처장이다. 대한민국 군인 출신으로 하루 서너 시간 잠자는 시간 외에는 국가보훈 일에 몰입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한 악명 높은 일제의 고등경찰 노덕술은 국가유공자인데 정작 백범 김구보다 현상금이 높았던 김원봉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홀대받는 상황을 깊이 고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분단 상황이 엄존한다. 그럼에도 중시할 것은 김원봉의 눈부신 독립운동이다. 뿌리가 친일도 아닌 중앙일보조차 조선일보 선동에 용춤추는 모습은 미련해 보인다.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2월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유관순 열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가 서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2월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유관순 열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가 서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릇 언론은 민족사가 풀어가야 할 과제들을 공론장에서 충분히 숙의할 수 있도록 도와야 옳다. 언론이 되레 온갖 선정적 선동으로 여론몰이에 나선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누군가 정보를 자극적으로 흘리고 친일언론 따위가 사실과 다르게 여론을 몰아가는 상황에서 김원봉 서훈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만, 일제는 물론 독재와 유착한 언론으로 살쪄온 특정 가문의 권세에 국가보훈처가 차분하고 당당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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