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석(31) JTBC 기자는 두 달 전 한 어머니의 말을 듣고 머릿 속이 멍해졌다. 어머니는 딸의 자책을 얘기하며 울었다. 8살 난 딸이 3년 내내 복막 투석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아이는 3년 전 ‘용혈성 요독증후군(햄버거병)’을 얻고 신장 기능 대부분을 잃었다. ‘엄마 내가 욕심부리다 햄버거를 다 먹어서 그래. 앞으로 착하게 살면 이 관 뺄 수 있어.’ 투병 생활 중 아이가 엄마에게 한 말이다.

어머니는 ‘햄버거병’ 인정을 두고 다국적 기업 맥도날드와 싸우는 최은주씨다. 서 기자는 그 날 통화를 계기로 햄버거병 문제를 쭉 지켜봤다. 그러다 3월 중순 중요한 자료를 입수했다. 햄버거 패티 납품업체 ‘맥키코리아’ 관계자들의 검찰 진술서 및 자술서 등이었다. 맥도날드가 문제 패티에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은폐하려 한 정황이 담겼다. 공무원의 직무유기 정황도 발견됐다. 이후 본격 취재가 진행됐다. 10여일 후인 3월27일 첫 보도 “맥도날드 ‘오염패티’ 팔린 것 감추려… ‘재고없다’ 허위메일”이 나왔다.

 

▲ 서준석 JTBC 기자
▲ 서준석 JTBC 기자

햄버거병은 이미 외국에선 널리 알려졌다. 미국에선 1982년 미시건주와 오리건주에서 맥도날드 매장 햄버거를 먹은 아이들 수십명이 집단 배탈이 나면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원인을 대장균 O15:H7균에 감염된 쇠고기 패티로 지목하며 ‘햄버거병’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선 2017년 공론화됐다. 2016~2017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아이 넷이 출혈성 장염에 걸렸고 부모들이 맥도날드를 상대로 고소했다. 최씨도 지난 1월 맥도날드 본사, 납품회사, 세종시 공무원 등을 고발했다.

서 기자가 가장 주목한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이가 햄버거를 먹은 뒤 어떻게 출혈성 장염에 걸리게 됐는지를 입증하는 책임이 피해자에게 쏠려 있었다. 햄버거 섭취와 발병 간 인과성을 증명하는 데엔 전문 지식과 법적 권한이 필요하다. 장출혈성대장균이 무엇인지부터 축산물위생관리법 세부 내용, 관련 업체의 관리감독 실태까지 파악해야 한다. 조사권도 없고 과학 지식도 부족한 일반 시민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법정 풍경은 단적인 예다. 서 기자는 지난달 맥키코리아 관계자 3명이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재판을 봤다. 변호인은 18명, 누구나 들어본 대형로펌 출신이었다. 증인은 이 질환에 해박한 미국 유명 학자로, 맥도날드 관계 기업에 자문료를 받고 있었다. 의학 지식없인 듣기 어려운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서 기자는 참관한 최씨를 봤다. 최씨는 모든 내용을 수첩에 기록했다. 고소인이 아닌 최씨는 법정 속기록도 얻지 못해 수첩 메모로 공부했다. 햄버거병 보도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된 이유다.

서 기자가 확인한 한 맥도날드 한국지사 상무의 수신 메일엔 ‘10개 매장에서 패티 15박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시가 납품업체에서 장출혈성대장균을 검출한 날 생산된 패티다. 맥도날드가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 상무는 보고를 올린 재고 담당자에게 지시해 납품업체 측에 재고가 없다는 메일을 보냈다. 이 담당자는 검찰에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도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는 맥도날드까지 확대되지 않았다.

 

▲ 지난 3월27일 jtbc 뉴스룸에 보도된 “맥도날드 ‘오염패티’ 팔린 것 감추려… ‘재고없다’ 허위메일” 보도.
▲ 지난 3월27일 jtbc 뉴스룸에 보도된 “맥도날드 ‘오염패티’ 팔린 것 감추려… ‘재고없다’ 허위메일” 보도.

 

 

 

“그때 맥도날드가 적절히 대처했다면.” 서 기자는 균이 검출된 2016년 6월1일 생산 패티만 60만개에 달한다고 했다. 대장균 오염 우려가 있는 패티가 확인될 경우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사실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 공무원, 납품업체, 맥도날드 모두 책임지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은 심지어 균 검출 통보가 공표되기 3일 전 납품업체 직원과 통화해 공표를 피할 수 있는 조건을 알려줬다. 납품업체는 ‘관련 패티 재고가 없다’고 세종시에 허위 보고했고 이 공무원은 업체 말만 믿고 현장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지난 5일 “아픈 아이와 가족의 어려움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깊은 위로를 드리나 수사를 통해 제품 섭취가 질병의 원인이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입장을 냈다. 서 기자는 “입증이 안 된 것일 뿐”이라며 재수사에 방점을 찍었다. 서 기자는 나아가 입증 책임이 공정해지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미·서유럽 일부 국가들은 피해자 주장에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식품 제공 업체에 ‘문제 식품이 위험하지 않다’고 입증하라 묻는다”고 밝혔다.

최씨 싸움은 진행 중이다. 그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과 지난 3일 공공기관의 관리감독 직무유기 부분을 근거로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서 기자도 후속 보도를 준비 중이다. 서 기자는 햄버거병 논란을 다룬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