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낙태권’ 선동에 생명 존중 무너졌다.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12일 국민일보 종교면 기사 제목이다. 일반적으로 기사 제목에 특정인, 집단의 주장을 나타내는 인용 부호 처리가 돼 있지 않는 한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간주한다.

순복음교회 국민문화재단이 주인인 국민일보의 이 기사는 아무리 보수 기독교계 목소리를 대변해 온 신문의 종교면 보도라도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원색적이다.

국민일보가 제목으로 뽑은 ‘낙태권 선동’은 국민일보가 전문가로 소개한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의 주장이다. 문 위원은 “헌재 결정으로 낙태죄가 없어진다 해도 낙태에 따른 여성의 죄책감, 육체적 정신적 손상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결국 성과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이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여성의 낙태할 권리’라는 선동 앞에 우리 사회가 넘어가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위원은 “합법적으로 죽어야 할 태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배 속의 태아를 더 일찍 죽이자는 해괴한 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데, 생명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성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여성의 낙태권’ 선동에 생명 존중 무너졌다_종교 34면_20190412.jpg
틀린 말이다. 합법적으로 낙태가 가능한 경우는 이번 헌재 결정 전에도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국민일보 사설도 밝히고 있다. 국민일보는 “낙태죄는 사실 선언적인 의미가 강했다. 현행법은 임신한 여성 또는 배우자에게 질환이 있는 경우, 성폭행에 의해 임신한 경우, 근친상간의 경우,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며 둘을 분리하는 시각을 거부하고,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은 임신한 여성이 겪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주목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여성에게 자녀의 양육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신체적·정신적·정서적 노력을 요구하고,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과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 학업 계속의 곤란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헌재는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며 여성과 태아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를 고정해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일보] 낙태죄 66년 만에 사실상 폐지_종합 01면_20190412.jpg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다수의견이 말한 임신중지의 ‘사회·경제적 사유’도 그 개념과 범위가 매우 모호하다며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는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들의 의견도 7년 전 합헌 때보다는 진일보한 견해를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 제정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모성보호정책 △임신 부부 지원과 육아시설 확충 등 입법을 통해 임신중지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번 헌재 결정에 국민일보와 통일교 계열인 세계일보를 제외하고 대체로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아일보는 ‘66년 만의 낙태 처벌 위헌… 여성 보호와 생명권 모두 존중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나라의 낙태 시술은 한 해 평균 3000건이 넘는다. 그러나 기소되는 경우는 1년에 10건 내외”라며 “기소돼도 실형 선고는 거의 없다. 이번 헌재 판결이 생명윤리 훼손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힐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여성의 안위가 태아의 안위”…이분법 넘어 ‘조화’ 강조_사회 04면_20190412.jpg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물론 종교계 등은 여전히 생명경시 풍조 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의 비범죄화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면서 “이번 헌재 결정은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 한국사회, 시대정신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사건이다. 이번 결정이 성 평등 사회를 보다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경향신문은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여성 인권의 역사적 진전”이라고까지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을 존중하고 확장시킨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며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국가가 여성의 몸을 자의적으로 통제하고, 그 통제를 거부하는 여성에게 가혹한 책임을 물어온 과거와 결별하고 여성인권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의미가 있다”며 “국가의 역할은 낙태나 출산과 관련해 여성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일보는 “시류에 따라 바뀌는 세상법과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며 헌재 결정을 부정했다. 국민일보는 “헌재 결정과 관계없이 낙태는 엄연히 살인 행위”라며 “낙태를 허용하는 조건을 확대하거나 임신과 출산·양육 환경을 위한 사회 경제적 안전망을 조성하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여성과 태아 모두를 보호하는 방안을 먼저 강구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도 “낙태죄 폐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며 “국회는 태아의 생명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와 의료계·종교계가 합심해 무분별한 낙태를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향신문] [사설] 낙태죄 헌법불합치, 여성인권의 역사적 진전이다_사설_칼럼 31면_20190412.jpg
다음은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12일 아침 종합일간지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낙태죄 헌법불합치, 여성인권의 역사적 진전이다”
국민일보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낙태 급증 우려된다”
동아일보 “66년 만의 낙태 처벌 위헌… 여성 보호와 생명권 모두 존중해야”
서울신문 “사회인식 변화 반영한 66년 만의 낙태죄 위헌 결정”
세계일보 “‘임신 초기 낙태금지는 위헌’… 생명경시 풍조 확산 막아야”
중앙일보 “66년 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성평등 계기로”
한겨레 “‘여성’ 보호할 때 ‘태아 생명’도 보호된다”
한국일보 “낙태 처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판단한 헌재 결정”, “낙태 후속 입법 과정, 성숙한 사회로 가는 논의의 장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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