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정말 많은 기자분들이 와 주셨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아침부터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이 대립이 아님을 밝히고자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기사도 찬반대립으로 쓰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헌재 앞에서 ‘여성계’는 찬성했고, 다른 이들은 반대했다‘고 보도하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 낮 2시40분께, 헌재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직전 문설희 ’모두를 위한 낙태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취재진에게 호소했다. 오전 9시부터 이어온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자들과 시민들은 결정 소식을 기다렸다.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료단체들이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진 헌법재판소 앞에서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료단체가 낙태죄 폐지 촉구 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헌재 앞에선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각계각층이 기자회견을 릴레이로 열고 낙태죄 폐지를 외쳤다. 학생·청년·종교계·전문가·연구자·장애계·의료계 단체들과 진보정당이 차례로 등장해 발언을 이어갔다. 문설희 집행위원장은 “저희가 전하고자 한 요구들을 잘 보도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한번 더 호소했다.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이들이 헌재 결정을 맞아 집회를 연 건 오늘이 두 번째다. 낙태죄 폐지 목소리는 꾸준했지만, 그 규모는 첫번째와 달랐다. 헌재는 2012년 8월 4대 4로 위헌정족수인 6명에 못미쳐 낙태죄 합헌 결정을 냈다. 나영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도 “2012년 기자회견 때 헌재 앞은 썰렁했다”고 회상했다.

▲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여론은 낙태죄 폐지로 돌아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조사에서 여성의 75% 이상이 낙태죄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첫 헌재 결정 때와 달리 목소리를 냈다. 인권위는 지난달 헌재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한다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과 생명권, 재생산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서를 제출했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우리는 헌재 앞에서 결정을 기다리지만, 헌재가 낙태죄 폐지를 해 준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싸운 결과”라고 강조했다.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연 릴레이 기자회견에서 장애여성공감 회원 서지원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연 릴레이 기자회견에서 장애여성공감 회원 서지원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애여성공감 회원 서지원씨는 본인 경험을 들며 낙태죄가 말하는 생명권이 허울뿐이라고 짚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들은 첫마디가 ‘아기 지우실거죠’였다. 이것이 모자보건법 14조, 장애인 낙태허용 조항 때문임을 나중에야 알고 분노했다. 우리는 낙태해야 할 몸, 해선 안 되는 몸을 정해놓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서씨는 “개개인이 누구나 자기 상황에 맞게 임신하고, 임신을 중지하고,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려면 낙태죄 폐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진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낙태죄가 마치 태아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 사이 대립하는 사안처럼 얘기된다. 그러나 임신중지는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리려 보건의료인들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 11일 낮 2시40분깨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참가자들이 법조항 숫자 '269'라고 적힌 피켓을 찢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1일 낮 2시40분깨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참가자들이 법조항 숫자 ‘269’라고 적힌 피켓을 찢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헌재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참가자들은 서로를 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낙태죄는 위헌이다. 우리는 승리했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오늘부터 1일”, “안전한 임신중지 여성건강권 보장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정부와 국가가 헌재 결정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임신중지 전면 허용을 강조했다.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헌재가 지난 6년 간 위헌 결정을 미뤄온 동안 여성은 점점 더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일부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법개정을 기반으로 정의를 세울 수 없다. 임신중지를 전면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이 상담제와 숙려기간제 등을 좋은 참고사례 마냥 인용한다”며 “그러나 2015년 프랑스와 같이 여러 나라가 이를 폐지하고 임신중지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이 후퇴한 법안을 일부러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 11일 오후 2시40분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이 전해질 즈음 헌재 앞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11일 오후 2시40분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이 전해질 즈음 헌재 앞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측과 폐지 반대를 외치는 측이 모두 헌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선고 시점에 취재기자가 100명 넘게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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