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가 마약 혐의자와 동성애를 연결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를 썼다가 삭제했다.

뉴시스는 지난 9일 밤 올린 ‘몰몬교 신자가 마약까지, 로버트 할리 부끄러운 민낯’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몰몬교 신자로 알려진 방송인 하일(60·로버트 할리)씨가 과거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당시 동성행각까지 벌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 본문 중 ‘동성행각’이라는 표현은 10일 오전 7시에 ‘동성애 행각’으로 수정됐고, 이날 오후 2시경 다시 “동성과 불륜행각”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기사 전체가 삭제된 상태다. 사전적 의미로 ‘행각’(行脚)은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여 어떤 목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님을 뜻한다. ‘친일 행각’, ‘범죄 행각’, ‘도피 행각’ 등이 용례다.

뉴시스는 하씨가 동성애를 부정하는 보수 성향의 종교인 몰몬교 신자라는 이유로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된 하씨의 성적 지향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씨의 경우 몰몬교 신자로 해당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마약과 동성애를 동시에 하는 등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 9일 ”로버트 할리씨가 동성행각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뉴시스 기사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지난 9일 ”로버트 할리씨가 동성행각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뉴시스 기사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하씨는 현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데 같은 혐의로 구속된 마약사범이 “하씨와 연인관계로 함께 마약 했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두 사람이 실제 ‘연인관계’인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설사 연인이라 하더라도 동성애를 마치 마약 투약과 같은 범죄 행위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을 전혀 고려 않는 악의적 보도 행태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는 성소수자 인권 조항으로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성적 소수자가 잘못되고 타락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지 않는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에이즈 등 특정 질환이나 성매매, 마약 등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뉴시스 기사뿐 아니라 상당 수 언론이 마약 혐의를 받는 하씨의 ‘동성 연인관계’ 의혹을 부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시아경제는 “경찰은 하씨 등이 마약 투약 후 동성행각을 한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진술도 일부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금도 버젓이 보도하고 있다.

▲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갈무리.
▲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갈무리.
애초 “몰몬교 신자 로버트 할리, 마약 혐의도 충격인데 동성행각 포착”으로 달렸던 한국경제 기사 제목은 현재 “몰몬교 신자 로버트 할리, 술·담배도 금지하는데 마약 혐의 ‘충격’”으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로버트 할리, 마약 공범 男과 동성행각..충격의 끝”(서울신문) △로버트할리, 과거 ‘동성연인 주장’ 진술에 마약 혐의 조사받아(조선일보) △로버트 할리 ‘동성 연인’과 필로폰 의혹(뉴데일리) △“로버트 할리와 동성애 관계” “함께 투약” … 男 마약사범, 경찰서 ‘충격 진술’(헤럴드경제) 등 여러 언론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마약과 동성애를 연결 짓는 기사를 쏟아냈다.

김경래 뉴스타파 팀장은 11일 자신이 진행하는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오프닝 멘트에서 “안 그래도 하씨와 관련된 확인 안 된 여러 정보가 뉴스라는 이름으로 어뷰징(abusing) 되고 있는 상황에서, 뉴시스라는 매체는 하씨의 성적 지향까지 들춰내는 기사를 썼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내가, 여러분이 침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성소수자도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 “동업자로서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다”고 힐난했다.

한편 하씨는 10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수원지법은 영장실질심사 이후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 자료가 대부분 수집돼 있고, 피의자가 잘못을 뉘우치면서 범죄를 인정하고 있어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주거도 일정해 구속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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