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임신 중지가 ‘범죄’ 낙인을 벗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임신을 자의로 중지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오후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 중 ‘의사’ 부분(의사낙태죄)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2명이 합헌 의견을 내 위헌심판 정족수 충족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만, 즉시 효력을 잃으면 법 공백으로 사회 혼란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법 개정에 시한을 두는 것을 말한다.

자기낙태죄는 자기 선택으로 임신중지한 여성을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동의낙태죄(270조 1항)는 이를 도운 의사나 한의사, 조산사 등에게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헌재는 청구인이 산부인과 의사라는 이유로 판단 대상을 ‘의사’로 한정했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이들은 자기낙태죄가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 예외 없이 전면·일률로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한다며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의사낙태죄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의 공백을 우려했다. “(두 조항에)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다.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헌법불합치 의견이 사회·경제적 사유를 강조한 것과 달리 임신 14주 무렵까진 사유를 묻지 않고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법 공백이 생길 여지도 적다고 봤다. 이미 이들 법조항이 “형벌조항으로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폐기된다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 11일 오후 2시40분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소식이 전해지자 헌재 앞을 지키던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1일 오후 2시40분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소식이 전해지자 헌재 앞을 지키던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면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보다 중시한 입법자의 위 같은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낙태죄는 1953년 제정된 이래 지금껏 유지돼왔다. 오늘 헌재가 낙태죄에 위헌 여부를 선고한 것은 2012년 8월 합헌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이다. 당시 헌재는 4대 4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다. 

헌재는 현행 규정을 잠정 유지하고, 2020년 12월31일까지 입법기관이 결정 취지에 걸맞게 법개정을 하라고 명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