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초대질량 블랙홀의 증거와 형태가 관측됐다. 한국천문연구원은 11일 EHT(Event Horizon Telescope:사건지평선 망원경) 연구진이 전 세계 협력에 기반한 8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초대질량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관측 결과는 10일(현지시각) 미국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특별판에 6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EHT란 ‘사건지평선 망원경’이라는 뜻으로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해 지구 크기 만한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영상을 포착하기 위한 국제협력 프로젝트이며, 망원경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건지평선(Event Horizon)’은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지대로, 사건지평선 내부로 들어가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의미의 개념이다.

이번에 관측된 결과는 영상을 통해 발표됐다. 해당 블랙홀은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은하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이다. 이 영상은 지구 밤하늘에서부터 5500만광년 떨어진 M87 은하의 블랙홀까지 직선방향으로 도달하는 54초짜리 짤막한 내용이다. 1광년은 빛의 속도(초속 약 30만km) 1년을 가야 도달하는 거리다. 이 블랙홀의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한다.

이론적으로 블랙홀은 그 안에 들어가는 어떠한 물체도 심지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천체이다. 중력이 크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휘어지게 만든다. 블랙홀 뒤에 있는 천체(별)에서 나오는 빛도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이 휘감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왜곡된 빛들이 블랙의 윤곽을 나타내게 하는데, 윤곽의 내부를 바로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EHT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어떤 물질이 사건지평선을 지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다면 그 일부가 에너지로 방출되는데, 이 때 높은 해상도의 관측 장비를 동원하면 사건지평선의 가장자리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M87의 사건지평선의 경우 블랙홀의 그림자(약 400억km)보다 2.5배가량 더 작다는 것도 밝혀냈다.


블랙홀은 어떤 경우에 생길까. 어떤 천체가 극단적으로 압축되어 작은 크기가 됐는데도 질량은 그대로일 때 생성된다. 지구만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을 생각해본다면 탁구공의 절반보다 작은 지름의 공 크기만큼 작아야 블랙홀이 된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같은 부피에 질량이 커질수록 중력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중력이 큰 이런 천체는 시공간도 휘게 하고 주변물질을 초고온으로 가열시킨다는 이론이다.

현대적 의미의 블랙홀은 1916년 독일의 천문학자 칼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인 ‘중력장방정식’을 정확하게 풀이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종필 건국대 교양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이종필의 인터스텔라’에서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로 보냈고, 아인슈타인은 그 내용을 검토한 뒤 슈바르츠실트를 대신해 학술지에 슈바르츠실트 이름으로 발표했다”며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론을 제공한) 킵 손의 지도교수인 존 휠러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은하의 중심부에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 또는 수십억 배 이상 되는 블랙홀도 존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그런데 이번에 정확히 태양 질량의 65억 배 되는 블랙홀을 관측했다.

블랙홀의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중력)이 큰 천체 주변엔 시공간이 왜곡, 즉 휘어진다는 중력장방정식을 발표했다. 아이작 뉴턴이 시간 따로 공간 따로 있으며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한 것에 반하는 결론이었다. 중력이 큰 곳에는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공간도 왜곡된다는 개념이다. 영국의 천문학자인 아서 에딩턴과 두 탐험대는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9년, 개기일식 관측을 위해 아프리카 해안의 프린시페 섬과 브라질 소브랄로 가서 관측한 결과 태양 주변의 빛이 1.61도 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처음 검증됐고, 그 후 100년 만에 거대(초대질량) 블랙홀을 관측했다.

▲ EHT 연구진이 1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게재한 논문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The Shadow of the Supermassive Black Hole). 사진=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
▲ EHT 연구진이 1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게재한 논문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The Shadow of the Supermassive Black Hole). 사진=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
EHT 망원경의 개념은 가상의 망원경으로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분해능’을 갖고 있다. 분해능이란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천문연구원은 이 관측이 지난 2017년 4월5일부터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8개 망원경이 참여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얻었다. EHT의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분석은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MPIfR)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헤이스택 관측소에 위치한 특화된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천문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자 등 8명이 동아시아관측소(EAO) 산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의 협력 구성원으로서 EH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한국이 운영중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의 관측결과도 본 연구에 활용됐다고 전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이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며 “향후 EHT의 관측에 한국의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 8개 망원경 :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

▲ 블랙홀의 구조 개념도. 사진=이종필교수의 인터스텔라
▲ 블랙홀의 구조 개념도. 사진=이종필교수의 인터스텔라
▲ EHT 연구진이 1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게재한 논문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The Shadow of the Supermassive Black Hole). 사진=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
▲ EHT 연구진이 1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게재한 논문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The Shadow of the Supermassive Black Hole). 사진=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