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회면에 민주노총 간부 페북이

1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12면)엔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페이스북 사진이 4단 크기로 큼지막하게 실렸다. 지난 3일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가 연행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풀려난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 ‘안하무인 민노총… 조사받은 경찰서 앞에서 웃으며 인증샷’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공공건조물 침임과 특수공무집행 방행 혐의로 체포된 이들이 안하무인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밝힌 이유는 2가지다. 한아무개 민주노총 조직국장이 시위 당일 영등포경찰서 경비과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나섰고, 체포된 이들이 풀려난 뒤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실 모두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이 유력한 취재 소스였다.

▲ 10일자 조선일보 12면.
▲ 10일자 조선일보 12면.

한아무개 조직국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실명을 깐 영등포서 경비과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썼다. 해당 경비과장은 노조원과 경찰의 충돌 때 “민주노총 한○○씨 자제해 달라”고 실명을 부르며 선무방송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경비과장은 “한씨의 선동이 너무 심해 실명을 거론했다”고 했다.

단체사진도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걸 그대로 옮겨왔다. 사진엔 경찰조사를 받고 풀려난 유아무개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10여명이 찍혔다.

조선일보는 한아무개 국장의 페이스북 글과 수석부위원장 페이스북 사진을 뼈대로,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실 자료와 경찰행정학과 교수 2명의 발언을 덧붙여 민주노총을 안하무인 집단으로 묘사했다. 윤재옥 의원실 자료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민주노총이 22차례 공공기관을 점거해 이명박 정부 1건, 박근혜 정부 13건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와 민주노총이 밀월관계라는 조선일보의 앞선 보도와 상충된다. 두 교수는 “해외에선 공공기관 점거는 말이 안 되는 일”이라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례를 근거로 조선일보는 “친노동과 집회 자유를 강조하는 현 정부 기조에 따라 경찰의 불법시위 대응 강도가 약해지면서 민노총이 공권력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노동자인 나라에서 정부의 친노동 기조가 문제될 일은 아니다. 집회의 자유를 강조하는 현 정부 기조도 문제삼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그냥 민주노총이 미울 뿐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강행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와 함께 국회로 들어가 반대의 뜻을 전달하겠다며 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이들을 막아섰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물리적 충돌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 25명의 노조원이 체포돼 서대문경찰서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폭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48시간 이내에 풀려났다. 국회 앞에서 왜 시위했는지부터 쓰는 게 먼저다.

대피방송 듣고 나섰다 강풍에 숨졌는데 산불 피해자가 아니라니

강원 산불 때 잠시 사망자 숫자가 2명으로 늘었다가 다시 1명으로 정정됐다. 5일 새벽 피해집계 때 일부 언론이 사망자를 2명으로 보도했다가 다시 1명으로 고쳤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70대 박아무개씨가 지난 4일 밤 9시께 대형 산불이 발생했으니 대피를 준비하라는 마을 이장의 안내방송을 듣고 90대 노모와 함께 대피할 상황인지 살피려고 집 밖으로 나왔다가 강풍에 날아온 함석에 맞아 숨졌다. 숨진 박씨는 1996년과 2000년 산불 때도 피해를 입어 발빠르게 대처하려다가 변을 당했다.

그러나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산불 사망자로 인정되려면 불에 타거나 연기로 인한 직접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안타깝지만 산불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 10일자 한겨레 13면(위)과 경향신문 8면.
▲ 10일자 한겨레 13면(위)과 경향신문 8면.

이 내용은 10일자 한겨레 13면과 경향신문 8면에 각각 실렸다. 한겨레는 ‘대피방송에 집 나섰다 사망했는데 뒤늦게 산불 피해자 아니라니요…’라는 제목을, 경향신문은 ‘대피방송 듣고 집 나섰다 강풍에 변 당했는데… 산불 피해자가 아니라니요’라는 제목을 각각 달았다.

두 신문은 긴박했던 산불 취재가 끝났지만 4일 밤과 5일 새벽을 오가면서 사망자 집계가 잠시 2명으로 늘었다가 1명으로 수정된 혼돈의 기억을 꼼꼼하게 되짚어 유족들 사연을 챙겨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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