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해당 지역에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됐다. 화재가 발생한 날 서울지역 방송사들은 당일 저녁 출발팀과 다음 날인 5일 새벽 출발팀으로 각각 선발대와 후발대를 나눠 강원도 화재현장으로 향했다.

취재진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다. 선발대로 출발한 한 종합편성채널 소속 A기자는 “현장에 도착하니 숨이 안 쉬어졌다”고 말했다.

▲ 지난 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동해시 망상동으로 확산하면서 동해고속도로 옥계∼동해구간 양방향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 사진=전영래 노컷뉴스 기자
▲ 지난 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동해시 망상동으로 확산하면서 동해고속도로 옥계∼동해구간 양방향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 사진=전영래 노컷뉴스 기자

 

고군분투했지만 곳곳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가 늑장 대응했다는 점 △방송사들이 수어 방송을 즉각 하지 않았던 점 △방통위가 68개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화재 6시간 후 카톡으로 뒷북 재난방송 요청한 점 △무리한 현장 생중계 △방송사들의 자막 오기 등이 지적됐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전국의 소방차 긴급 동원령이 발령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산불 소식을 전하다 말고 밤 23시5분에 정규프로인 ‘오늘밤 김제동’을 방영했다. 강원도민과 누리꾼들은 “전국이 불바다 됐는데 ‘오늘밤 김제동’ 틀어주는 KBS”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KBS 춘천 소속이었던 B기자는 “강원도는 영서보다 영동에서 산불이 잦다. 이례적으로 미국과 비슷하게 산불이 났다. 강원도 주민으로서 산불로 사망자가 나온 걸 처음 봤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강원지역 지상파 3사도 지역 보도에 소홀했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번에 더 절실히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B기자는 “하지만 강원지역 케이블SO는 정말 신속하게 대응한다. 강원도민들은 재난 발생 시 지상파 3사 안 본다. 너무 늦다. 케이블SO가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원지역 케이블SO 소속 C기자는 “강원지역에 불이 나면 새벽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작은 불에도 수십 분 내로 보도국이나 현장에 투입된다. 서울·지역 지상파 3사보다 훨씬 빠르게 방송한다. 우리끼리도 지상파보다 빠른 중계에 놀라워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케이블(SO) CJ헬로가 지난 4일 강원도 고성 산불 소식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사진=CJ헬로 유튜브채널 보도화면 갈무리.
▲ 케이블(SO) CJ헬로가 지난 4일 강원도 고성 산불 소식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사진=CJ헬로 유튜브채널 보도화면 갈무리.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르면 방송사는 긴급재난이 발생했을 때 중간확인 과정을 배제하고 즉시 재난방송을 하고 시청자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기존 자막과 다른 형식을 활용해 긴급한 재난 상황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련 법령에 따라 현재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로 지정돼 있다. 이 법에 근거해 KBS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리한 현장연결과 자막 오기 사고도 있었다. YTN은 화재 당일 저녁 현장을 중계하다 소방관에게 “화약 창고가 있다. 피하라”는 말과 함께 촬영을 제지당했다. 이 화면이 그대로 방송됐고 누리꾼들은 “아무도 YTN에 이런 거 하라고 요구한 적 없다. 소방서 앞에서 화약 창고가 있다는 소방관의 제지에도 왜 저런 그림에 집착하는가”라고 지적했다. MBC는 속초 가스충전소가 폭발했다는 오보를 속보로 전했다가 정정하기도 했다.

 

▲ YTN 기자가 지난 4일 화재현장 생중계를 하다 소방관에게 “화약 창고가 있다. 피하라”는 말과 함께 촬영을 제지당했다. MBC는 ‘속초 가스충전소 폭발’이라는 자막을 달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진=위쪽부터 각각 YTN과 MBC 보도화면 갈무리.
▲ YTN 기자가 지난 4일 화재현장 생중계를 하다 소방관에게 “화약 창고가 있다. 피하라”는 말과 함께 촬영을 제지당했다. MBC는 ‘속초 가스충전소 폭발’이라는 자막을 달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진=위쪽부터 각각 YTN과 MBC 보도화면 갈무리.

 

SBS는 구조 헬기가 뿌린 물을 그대로 맞아 촬영 장비가 파손되기도 했다. SBS는 불이 난 다음 날인 5일 새벽 구조 헬기가 뜨자마자 산으로 달려가 이를 촬영하려다 헬기가 뿌린 바닷물을 맞아 장비가 파손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장애인 관련 언론사 비마이너는 화재 발생 당일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 2곳 등에 수어 통역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전장연은 “지상파는 당장 화재 뉴스 속보에 수어통역을 도입해달라. 장애인도 재난 속보를 듣고 안전해질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지적했다.

수어방송은 지상파보다 종편이 더 빨랐다. KBS는 재난 발생 다음 날인 5일 오전 8시에 수어 통역 방송을 시작했고 MBC는 오전 8시30분, SBS는 오전 9시50분부터 수어 방송을 시작했다. 오히려 지상파 3사보다도 종편인 JTBC(6시59분)와 TV조선(6시57분), MBN(7시), 채널A(9시20분)가 이날 오전 먼저 수어 통역을 방송했다.

▲ 지난 4일 밤과 5일 새벽 지상파 3사(KBS·MBC·SBS)는 강원도 산불 재난 특보와 뉴스를 내보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방송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각 방송사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4일 밤과 5일 새벽 지상파 3사(KBS·MBC·SBS)는 강원도 산불 재난 특보와 뉴스를 내보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방송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각 방송사 보도화면 갈무리.

방통위는 68개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화재 발생 6시간 후에 재난방송을, 화재 다음 날인 5일 오전 11시에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주요 10개 방송사에 수어방송을 요청했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르면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재난 또는 재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난방송을 요청할 권한을 갖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재난방송 매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때도 그렇고 국가 재난이 있을 때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데도 아직도 취채 절차가 완성이 안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진봉 교수는 “강원지역 한 케이블SO는 산불이 나자마자 30시간 내내 방송했다. 지역주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어떻게 대피해야 하며 어느 정도까지 산불이 번졌는지 정확하게 보도했다. G1은 SBS이니까 계약관계라 해도 KBS와 MBC는 지국이 있다. 중앙사와 협의해야 해서 마음대로 편성할 수 없고 인력과 장비도 부족하니 중앙에서 지원해 신속히 보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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