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8시간에서 52시간(주말 포함)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제도(주 52시간제)의 계도 기간이 지난달 31일 종료되면서 언론사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장으로 신고될 수 있다는 걱정부터 나온다. 

유연근무제나 재량근무제 도입을 놓고도 노사가 대립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근무시간도 줄이고 실질적인 임금 하락도 막는 두 가지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싸움에 돌입했다.

신문과 방송은 사정이 다르다. 신문은 계도 기간이 끝나면서 당장 고용노동부의 노동시간 단축 근로 감독이나 자사 구성원들의 위반 신고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근로기준법을 어긴 사업장으로 거론되면 평판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너희들도 못하는데 주 52시간제 기사를 쓸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방송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 특례 업종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에 속해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작된다. 3개월 정도 여유가 있지만 다양한 직군이 포함돼 있는 방송업 특성상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지상파 3사는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준수해야 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지상파 3사는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준수해야 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KBS의 경우 지난달 18일 근로시간 단축 노사 공동 TF를 만들어 주 1회 정례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최근 사측은 해외 출장 시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도입에 따른 실비 지급액을 증액하는 안을 내놨다. 노사는 기존 노동자 처우가 후퇴하지 않으면서도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장이 되지 않으려는 방안을 찾고 있다. 

쟁점은 직종별로 어떤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주 52시간제를 지키느냐 여부다.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1년 동안 시간을 벌었지만 직종에 맞는 적절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뉴스룸과 스포츠국, 예능국, 영상제작국, 중계기술국 등 직종에 있어 어떤 유연근무제를 실시할지 논의조차 못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노사 공동 TF에 참여하지만 어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교섭대표 서면합의, 직종대표 서면합의는 물론 무노조 구성원의 교섭 위임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최종 합의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KBS 한 기자는 “경찰 기자만 보더라도 고민이 많다. 시경캡(경찰 출입 기자를 관리하는 부서장)은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취재 지시를 거의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KBS에 비하면 MBC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MBC 노사는 노동시간 단축TF를 만들어 지난 2월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조건 개선 노사 합의’를 이끌었다. MBC는 실질적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가로 쟁점을 좁혔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구성원의 평균 노동시간을 4~6월까지 각각 5%P 단축해 모두 15%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부서에서 운영됐던 시간외 근무 월정액 보상 제도를 폐지하고 3월부터 실제 근무시간을 입력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하루 연속 노동시간이 13시간을 초과할 경우 최소 8시간의 필수 휴식 시간을 부여하고 주1회 휴무를 보장하기로 했다.

다만 MBC 노사는 “연장노동시간이 150시간을 초과하는 구성원이 한달 평균 50여 명에 이른다. 이는 주 평균 80시간 이상 노동하는 노동 형태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매달 현황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MBC 노사 합의는 올해 6월30일까지 유효하다. MBC는 6월 말까지 합의 내용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해 주 52시간제 최종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SBS는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의 경영 개입 논란으로 노사 관계가 어그러지면서 주 52시간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8월 SBS 노사는 한시적으로 본부별 68시간 근무제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취재와 제작 현업 부서에서 일부 유연근무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원칙에도 합의했다. 다만 이 합의는 지난해 12월31일부로 끝나는 일몰 합의였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해 “내년 7월1일부터 최장 52시간 노동시간 체제가 적용되는 만큼 노사는 이번 합의 직후 52시간 체제 적용을 위한 협상에 착수할 것”이라고 했지만 노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 논의가 난망하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옥 및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옥 및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중앙일보와 JTBC는 지난해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임금 하락에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주 52시간제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을 막기 위해 보도수당(JTBC 보도국)과 취재·제작수당(중앙일보 편집국)을 신설해 도입했지만 국별로 수당 차이가 나고 편집국 부서 안에서 차등을 주며 부작용이 생겼다.

한 중앙일보 기자는 “큰 사건이 터지면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제작수당이 지급된다는 이유로 초과 근무에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편집국은 오전 기사 출고량이 늘면서 퇴근 후 기사를 미리 쓰거나 주말용 기사를 쓰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에 대한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중앙일보는 주5일 근무제로 전환하며 초과 근무시간만큼 대체휴가를 부여하는 식으로 주 52시간을 지키고 있다. 일부 부서는 밤 11시 이후 퇴근 시 다음 날 오후에 출근토록 하는 방식도 활용한다. 다만 돌발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책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한 JTBC 기자는 “스포츠문화부처럼 써야 할 기사는 많지만 인력이 적은 부서는 주말 근무는 자주 돌아오는 반면 부족한 인력만큼 대체휴가를 제때 쓰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JTBC 통합노조는 노동시간 초과 여부를 따지는 데 디지털 기록이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업무 시스템의 접속 기록과 대중교통 이용 기록, 카카오톡 메신저 업무 지시 내용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노사 혁신 TF회의를 만들었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구성원들 사이에선 자녀 육아 문제가 발생하는 특정 시기 유연근무제를 하고 휴일에 재택근무를 하자는 의견이 있다. 법정 휴가인 연차도 소진하기 쉽지 않는 노동 조건 탓에 휴가라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TV조선은 52시간제를 대비해 지난해부터 근무시간을 조정해 출근시간을 늦췄다. 하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이 아니라 당장 52시간제를 적용받지는 않는다. TV조선은 현재 기자직군 외에도 각 직군을 대표하는 회의체를 구성했고, 사측과 회의를 열어 52시간 관련 합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뚜렷한 합의가 도출된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부터 주 52시간제를 적용했다. 동아일보는 사보를 통해 사진부는 철야 근무를 없앴고 발제 및 회의 시간을 간소화했다고 했지만 사원들 입장에서는 체감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측은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추기 위해 주5일 근무를 시행 중이라지만 주 6일 발행 특성상 휴일에도 취재·보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핵심 쟁점은 재량근로제 도입 여부다. 사측은 기자직에 한해 재량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재량근로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실질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량근로는 업무 성격으로 볼 때 시간 배분이나 업무 지시가 어려워 노동자 대표와 사용자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기자들은 서면 합의도 없이 재량근무와 비슷하게 정확한 노동시간을 산정하지 않고 일했는데, 재량근무를 도입하면 합법은 될 수 있지만 실제 기자들의 근무시간은 주 52시간을 초과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 매체별 주 52시간 진행 상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 매체별 주 52시간 진행 상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한겨레의 경우 업무 직종에 따라 회사가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간주시간근로제, 재량근로제를 도입하려고 하지만 기자 직군의 재량근로제 도입에 대해서는 노사 간 입장이 갈린다. 

정남구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장은 “재량근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서 검토했지만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고 약간의 연장 근로수당을 주는 걸로 이 상황을 끝내버릴 위험이 있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계획도 없고, 근로시간 단축 노력도 없는 상황에서 재량근무제에 동의하면 노동자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연합은 그나마 대비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은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제에 합의했다. 2주 이내의 일정 단위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정주에 40시간, 특정일에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제도다. 

연합은 또한 휴일 9시간 초과 근무명령 금지 원칙을 세웠고, 연장·야간·휴일 노동은 노조가 정한 새 기준 시급의 50% 가산해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부당 사유로 초과근무를 명령할 시 회사의 시정 조치가 들어간다.

연합은 오후 5시58분이면 퇴근 방송이 나온다.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하라는 메시지다. 또 신규 인력 30여명을 채용해 주 52시간제가 지켜지지 않는 부서에 적절히 배치할 예정이다. 

간주근로제가 적용되는 특파원 등에 대한 정당한 수당 책정은 과제다. 노사는 재난이나 정상회담 등 국가적 사안 취재엔 10시간, 출장이나 해외특파원은 8시간을 하루 간주 근로시간으로 합의했다. 이들은 취재 현장 특성상 간주 시간보다 근로시간이 많을 때가 빈번하다.

근로시간을 정확히 체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인 언론사도 있다. 헤럴드경제는 조합원의 근무시간 실태조사를 위해 시간을 체크하는 앱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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