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강원도 산불 재난 사고가 발생한 후 5일 새벽까지 국가재난주관 방송사인 KBS는 물론 MBC·SBS 지상파 뉴스에서 장애인을 위한 수어(手語) 통역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 후 9일 오후 장애인단체들이 직접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단체들은 이날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하며 KBS 등 지상파 방송사에 수어 통역 의무 실시와 화면해설 제공 기준 등을 마련하고 전문 인력풀을 구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에는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과 화면해설, 자막방송 의무 실시 지침 마련을, 행정안전부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어 브리핑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수어 브리핑 자료를 제공을 촉구했다.

▲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단체들은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과 화면해설, 자막방송 의무 실시 지침 마련 등을 촉구하는 차별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단체들은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과 화면해설, 자막방송 의무 실시 지침 마련 등을 촉구하는 차별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김주현 장애벽허물기 대표는 서울 중구 인권위 건물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하지 않는 것이나 화면해설은 필요 없을 것으로 방송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며 “우리는 인권위 차별 진정을 통해 방송사들이 다시는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방송사를 관리·감독하는 방통위에도 재난 방송에서 장애인 정보 제공 기준을 만들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인 임영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산불 재난방송을 보던 4일 밤, 가슴이 타들어 갔다. TV에서는 산불 소식이 나오는데 수어 통역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KBS, MBC, SBS 채널을 바꿔 봤지만 수어 통역이 없었다. 뉴스를 전문적으로 하는 케이블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내가 있는 주변에서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고 술회했다.

미디어오늘이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방송통신위원회 재난방송 관련 자료에 따르면 KBS는 재난 발생 다음 날인 5일 오전 8시에 수어 통역 방송을 시작했고 MBC는 오전 8시30분, SBS는 오전 9시50분부터 수어 방송을 했다.

▲ 지난 4일 밤과 5일 새벽 지상파 3사(KBS·MBC·SBS)는 강원도 산불 재난 특보와 뉴스를 내보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방송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지난 4일 밤과 5일 새벽 지상파 3사(KBS·MBC·SBS)는 강원도 산불 재난 특보와 뉴스를 내보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방송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외려 종합편성채널 중 JTBC(6시59분)와 TV조선(6시57분). MBN(7시)가 지상파보다 먼저 수어 통역을 시작했다. 채널A는 9시20분, 보도전문채널인 연합뉴스TV는 4일 오후 7시45분 수어 방송 시작 후 줄곧 통역이 지원되지 않다가 5일 오전 11시35분 수어 방송이 재개됐다. YTN은 5일 오전 11시까지 수어 방송이 없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MBC를 제외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의 카메라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오늘 기자회견 취재에 기자들이 와 있는데 눈앞에 MBC 방송사도 보인다”며 “특히 공영방송은 공공성을 띠고 정확하고 발 빠른 뉴스를 단순히 듣고 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제공할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수어로, 화면으로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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