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 교수 성폭력 사건 첫 공판에서 가해자 주장을 대변하는 보도가 되풀이됐다.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재판이 열린 8일 언론에 2차 가해를 멈추라고 호소했다. 하일지 동덕여대 교수는 학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이날 재판에 나왔다.

하 교수 성폭력 피해 폭로자를 지지하는 학생 10여명이 꾸린 연대체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SNS에서 “언론은 가해 교수의 주장을 재판부 의견인 양 오인하도록 하는 헤드라인을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가해자의 주장만을 헤드라인으로 내세우거나, 피해자가 입은 강제추행을 ‘000’ 등으로 묘사하는 등 보도행태를 부디 멈춰달라”고도 했다.

▲ 8일 주요 언론은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일지 동덕여자대학교 첫 공판을 보도하며 가해자 주장을 제목과 본문에 주요하게 인용했다. 네이버 뉴스 검색결과 갈무리
▲ 8일 주요 언론은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일지 동덕여자대학교 첫 공판을 보도하며 가해자 주장을 제목과 본문에 주요하게 인용했다. 네이버 뉴스 검색결과 갈무리

하 교수의 강제추행 혐의 첫 공판이 이날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렸다. 하 교수와 변호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공판 직후 하 교수 측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대다수 기사는 하 교수 측 주장을 제목과 본문에 직접인용했다. 본문에선 추행 행위를 구체적이고 상호합의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써 묘사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이는 오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피해를 당한 이가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미투 운동의 의의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아영 비대위 공동의장은 “대다수 기사는 성폭력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가해와 피해가 분명한 강제추행인데, 이를 지우고 접촉 장면만 자세히 보도했다. 이런 표현은 피해자 입장에서 위압적”이라고 지적했다. 문 공동의장은 “거의 모든 언론이 ‘강제성이 없었다’ ‘극구 부인’ 등 가해자 주장을 주어를 뺀 채 헤드라인에 썼다. 이는 마치 재판부 뜻인 마냥 읽히고, 독자가 본문을 클릭해 확인할 수 있다해도 제목만 보고 동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5월 하일지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와 피해자 보호를 요구하며 학교 본관에 붙인 포스트잇. 사진=동덕여대 H교수 사건 비상대책위원회 트위터
▲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5월 하일지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와 피해자 보호를 요구하며 학교 본관에 붙인 포스트잇. 사진=동덕여대 H교수 사건 비상대책위원회 트위터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 하일지 교수는 지난해 3월 문예창작학과 1학년 전공 수업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 폭로자와 미투 운동을 비하한 사실이 학생들의 고발로 알려졌다. 하 교수가 문학수업 중 일상적으로 여성혐오 발언을 해온 사실도 함께 공론화됐다. 

이를 발단으로 이튿날 피해 학생이 하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그러나 하 교수는 폭로 직후 ‘사과 뜻이 없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학생을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로 맞고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지난해 말 하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폭로 학생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비대위는 “5월 13일에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는 피해 학우의 증인 신문이 있을 예정”이라며 “동덕여대 학우들과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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