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말 얘기다. 중앙일간지 부산 주재기자가 그 날 쓸 기사가 없어서 하나 지어내 짧은 기사를 썼다. 석유 난로를 피워놓고 잠자던 사람이 가스에 중독돼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데스크가 단신 처리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 이 기사는 사회면 머리에 앉았다. 사회부장은 연탄가스 중독 기사는 이틀에 한번꼴로 나오지만 석유가스 중독, 그것도 사망은 처음이라고 봤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주유종탄’ 정책까지 더해져 석유난로 사용량이 늘어날 때라 국민들에게 석유가스 중독도 사망에 이를 만큼 위험함을 알릴 기회라고 여겼다.

기사가 지면에 실린 날 사회부장은 직접 시외전화까지 걸어 부산 주재기자에게 특종을 칭찬하면서 “심층 취재해 별도의 해설기사를 써라”고 지시했다.

기자는 낭패였다. 그 기사는 완전한 창작물이었다. 그렇다고 이 판국에 발을 뺄 수도 없어 멋진 해설기사까지 썼다. 다음날 ‘문제의 석유난로’ 사진까지 실린 해설기사가 실렸다.

경찰청(당시 치안국)은 변사 보고를 하지 않은 부산시경과 일선 경찰서를 닦달했다. 추궁받은 해당 경찰서 담당형사는 신문에 실린 난로 사진을 면밀히 관찰하다가 무릎을 쳤다. 안면 있는 난로였다. 경찰서 당직실 난로였다. 이렇게 문제의 기사는 날조로 드러났다.

▲ 동아일보는 1966년 12월15일자 6면에 실린 ‘부엌과 연료혁명’이라 제목의 기사에서 석유난로를 가스중독 위험이 없다고 소개했다.
▲ 동아일보는 1966년 12월15일자 6면에 실린 ‘부엌과 연료혁명’이라 제목의 기사에서 석유난로를 가스중독 위험이 없다고 소개했다.

기사 거리를 찾지 못한 기자가 궁여지책으로 지어내 조작보도를 해놓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조작기사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일선 경찰은 신문에 난 주소대로 숨진 사람을 찾았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상부의 꾸중과 재촉에 불필요한 경찰력을 낭비했고 그 사이 꼭 필요한 치안 수요에 대응하지도 못했다.

신문에 난 사진 때문에 난로 제조사도 발칵 뒤집혔다. 본사엔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리점들도 너도나도 제조사에 반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에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주유종탄 정책도 한몫했다. 주유종탄 정책은 시장경제와 동떨어진 정치적 이유로 추진됐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저개발국인 한국이 60년대 말에 ‘석탄을 버리고, 석유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겠다’는 펴는 건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석탄은 당시 국내에서 충분히 생산 가능한데도.

60년대 들어 가정용 난방 연료가 나무 땔감에서 연탄으로 바뀌자 석탄 생산업자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1966년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킨다면서 강력한 가격통제 정책을 폈다. 정부는 한 장에 15원하던 연탄 값을 8원으로 묶어 버렸다. 석탄업계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생산량을 줄였고, 공급 부족은 더 심해졌다. 시민들은 가을이면 연탄 사재기를 시작했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그해 연탄 공급량이 바닥났다. 연탄배급제가 도입됐고, 성난 주부들은 연탄집게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엄혹한 군사정권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 동아일보는 1970년 1월19일자 5면엔 ‘연탄가스보다 무서운 석유가스 중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석유난로가 연탄보다 가스중독 위험이 더 높다고 했다.
▲ 동아일보는 1970년 1월19일자 5면엔 ‘연탄가스보다 무서운 석유가스 중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석유난로가 연탄보다 가스중독 위험이 더 높다고 했다.

연탄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에너지정책을 석탄에서 석유 중심으로 전환했다. 그것이 바로 주유종탄 정책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정책은 1974년 1차 석유파동 때 크게 흔들렸다. 중동의 석유생산국들이 석유생산량을 감축하자 한국에선 1974년 봄에 석유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한국에선 2년 사이에 난방유 값이 5배나 폭등했다.

정부의 주유종탄 정책을 믿고 석유로 옮겨갔던 시민들은 다시 연탄을 사들여야 했다. 정부의 주유종탄 정책으로 생산량을 줄였던 석탄업계는 연탄 수요가 급증하자 뒷감당을 못했다. 결국 연탄 값은 3~4배 뛰었다. 이렇게 정치는 늘 헛바퀴만 돌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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