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꿈꾸었듯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통일적으로 움직인다면 노동자들은 가히 세상을 바꿀 혁명적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도, 경쟁과 차별이라는 이름의 분절화 전략도 노동자들은 연대의 힘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노조조직률은 10%를 겨우 넘는다. 10명 중 1명이 노조원이고, 그나마도 기업별 노조가 대다수인 한국사회에서의 노동3권 보장이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조 협약,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98조 협약 등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니 마니 논쟁하는 정도밖에 안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지 싶다.

▲ 서울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
▲ 서울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
필자가 일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에도 지난해 노조가 생겼다. 10명 중 1명밖에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취약계층 노동자 지원이라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공급을 민간부문의 전문적 역량을 발휘해 보다 능률적으로 공급하도록 설립된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이다. 그러나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민관위탁의 의미는 좀 다르다. 우리는 서울시의 공공사무를 수행하지만, 공무원이 아니다. 사실은 서울시 소속조차 아니며, 비영리단체 소속이다. 정규직이지만 민간위탁 기간이라는 기간 제한이 있어 고용이 불안정하며, 서울시가 설정한 예산 범위에서 우리의 노동조건이 정해진다.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사무편람도 서울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조가 사용자와 체결한 단체협약도 서울시 승인을 얻어야 할 판이다.

노조법의 목적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동자가 단결해 교섭하고 단체행동하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는 누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는지가 아니라 노동의 결과를 누가 누리는지, 누가 그 노동자들 노동조건을 결정할를 기준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청이나 파견, 특수고용이나 용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계약 밖으로 외부화 된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어 교섭하고 협약 체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실질적 노동조건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노동은 지자체 고유사무 수행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며 실질 노동조건 향상을 결정할 권한 또한 서울시에 있다. 유니온시티를 표방하는 서울시의 모범사용자로서 역할이 중요하고, 이를 기대한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사실 서울노동권익센터노조는 아직까지 각종 노사협의를 하면서도 온전한 단체협약은 체결도 못했다. 서울시 협조나 승인을 위한 교섭 테이블조차 아직 구성하지 못했다. 서울시가 민간위탁 사업장의 노동권 주장에 얼마나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확인도 못했다는 뜻이다. 이유는 노조가 주체로 성장하기 위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민간위탁기관이라는 구조적 상황도 한 몫 한다. 민간위탁기관은 민관협치라는 특성상 민과 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조직을 공유하고 활용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도 위탁을 준 서울시와 관련 공무원, 수탁기관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동운동의 역사를 공유하는 활동가, 노동 전문가, 단순히 서울시 유관기관을 직장으로 택한 직원, 취약계층 이해대변조직과 이해 당사자, 시설과 서비스 이용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이에 따른 상시적이고 빈번하며 다채로운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민간위탁 사업수행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최진혁 노무사
▲ 최진혁 노무사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생기면서 노조도 이해관계 갈등 조정과 민원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의사소통창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물론 노동의 자기존중과 자기결정의 확대라는 면에서는 이 또한 의미 있는 역할이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조건 분배투쟁이 노조의 기본이라면 주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제도개선도 해야 하고 고용안정과 처우개선도 해야 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노동자를 지원하는 임무를 가진 민간위탁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만든 서울노동권익센터노조라는 실험은 오늘도 진행중이다. 신명나게 노조활동하면서 건강하게 스스로의 노동을 결정하는 유니온시티 서울시가 조속히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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