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이서 똑같이 1억원씩 돈을 내서 빵 공장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공장에서 만든 빵이 인기를 얻어 공장을 확장하고, 건물 사고 가게도 새로 냈다. 이런 의사결정은 기업 경영진이 한다. 이 기업에선 누가 경영진을 맡았을까. 출자자 열 명 중에 셋이 가족이었다. 이들은 지분 30%로 최대주주 자격을 얻었고, 그 자격으로 이사회와 경영진을 장악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셋은 빵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를 따로 만들었고, 빵 제조기술의 노하우를 활용해 최고급 빵 브랜드를 담당하는 업체도 따로 설립했다. 사업 확장 때마다 본사 경영권 행사를 통해 이익 내기 쉬운 업체를 직접 출자했고, 심지어 회사가 새로 산 건물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의 가게 점주를 직접 맡았다. 자신들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유난히 배당성향이 높았다. 이 셋은 새로 생긴 계열사 임원도 겸직하며 모든 곳에서 따박따박 급여를 받고 퇴직금을 충당했다. 이 빵 공장 사례가 상당히 익숙하다면 한국 재벌들이 보여온 모습을 나름 눈여겨 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자본주의 원칙, 시장경제 기본 원리는 한국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논란인 ‘연금 사회주의’만 봐도 그렇다. 국민연금이 올해 288사의 주주총회에 참가해 185개사, 254개의 안건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히 국민연금의 의견 행사 중에서 대한항공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반대가 부결에 영향을 주며 논란이 거세졌다.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피터 드러커는 노동자가 조성한 연기금이 기업의 지배권을 장악할 것이란 맥락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겐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최우선 가치다. 노동자도 기업의 윤리적 행동 보다는 노후에 연금을 돌려받길 원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도 ‘연금 사회주의’보단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한 주주권 행사에 가깝다. 유독 한국에선 재벌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것이 ‘반시장주의’란 ‘반지성주의’가 난무한다.
한국의 많은 언론이 재벌 이익에 복무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광고비를 받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서 언론이 보이는 모습과 관련이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사례다. 경제매체인 머니투데이와 자본시장의 전문매체인 더벨은 최대주주가 동일인이란 공통점이 있다. 차이는 이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머니투데이에선 15.1%이고, 더벨에선 39%다. 시장에선 두 업체가 관계가 있는 회사로 인식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더벨은 머니투데이가 9%의 지분을 보유해 지분법 적용이 되는 ‘관계회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