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에 시달리던 이윤혁씨가 지난해 10월말 사망했다. 여자친구 A씨와 함께 회사에 입사한지 1년6개월 만이었다. VFX(Visual Effect, 시각특수효과) 등 영화 후반작업을 담당하는 회사 ‘덱스터 스튜디오(덱스터, 대표 류춘호)’엔 당시 여러 프로젝트가 몰리고 영화 ‘PMC’ 작업 단가가 낮아져 업무가 과했던 상황이었다. 그날도 이씨는 밤 12시반쯤 퇴근하고 새벽 3시40분까지 직장상사와 소주 약 5병을 마셨다. 이후 회사 인근 자기 살던 옥탑방에서 추락사한 채 아침에 발견됐다.

사망 전 이씨와 A씨가 나눈 대화를 보면 이씨는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같은해 9월18일 이씨는 A씨에게 “나이도 젊은데 왜 점점 쫄면서 살까라는 생각에 깊은 고민을 마쳤어. 내년에 벤쿠버 워킹홀리데이 같이 실행하고 떠나자. 너의 20대 나의 20대 멀지않다. 그렇게 살자”라고 말했다. 9월 다른 대화에는 업무가 과도하다고 토로하는 내용도 있었다.

10월에도 A씨에게 회사 고충을 털어놨다. “4명 정예 뽑아서 다 한다네. 제발 나 안 걸려라. 제발. 만약 나 걸리면 주말출근하고 난리 나겠지?”(10월1일) “으아 정신이야. 퇴근하고 바로 전화할게. 갑자기 하루밤 사이에 채찍 왜 이렇게 때리지. 다 보채네. 덱스터의 채찍질이 시작됐다. 집을 보내지 않는다”(10월2일)

덱스터엔 퇴사자도 많았다. 이씨 역시 2019년 4월 2년을 채우고 퇴사할 예정이었다. “인사발령 지금 봤는데 9월 달에도 퇴사만 10명 넘네. 근데 10명 정도 또 들어옴. 그냥 밑빠진 독에 계속 물 붓는 거지. 나도 나가야  해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10월4일) 불면증에 시달린 정황도 있다. “잠을 못자서 큰일이네 말초신경이 곤두 서있다. 전에 사놨던 맥주 한 캔까지 마셨는데 머리만 아프고 잠 안와. 무서워”(10월22일)

▲ 지난해 10월10일 오후 6시40분경 이윤혁씨가 애인A씨와 나눈 대화. 저녁에 제때 퇴근해서 애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하지만 야근 때문에 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사진=A씨 제공
▲ 지난해 10월10일 오후 6시40분경 이윤혁씨가 애인A씨와 나눈 대화. 저녁에 제때 퇴근해서 애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하지만 야근 때문에 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사진=A씨 제공

회사는 이씨 죽음에 도의적 책임을 졌다. 이씨 아버지 이훈씨는 미디어오늘에 “회사(덱스터)에서 유감표명하고 장례비용을 부담했다”며 “김용화 당시 대표(영화 신과함께 감독)는 직원이 죽었는데도 안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검 등 경찰 조사결과가 나오면 추후 보상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타살혐의는 없었고 ‘추락으로 인한 다발 장기 손상’이란 부검결과가 나왔다. 아버지 이씨는 “처음엔 어느 정도 회사 책임이 있다고 하다가 말을 바꿔 협상이 안 됐다”고 했다.

아버지와 A씨는 이씨의 죽음을 직면하며 ‘그날’을 복기했다. 아버지 이씨는 “처음에 담당형사가 ‘유서는 없지만 젊은 친구들이 스트레스·분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했다”며 “(아들이 살던 옥탑방에서) 실족하는 게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 말이 ‘난간에 손을 짚은 흔적이 있고 머리가 바닥 쪽을 향해 떨어졌다’는데 발을 헛디뎠다면 손을 난간에 짚을 이유도 없고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싸는 등의 행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A씨는 죽기 한달 전쯤 자신에게 “죽고 싶다”고 얘기한 게 마음에 걸렸다. A씨에 따르면 그날 아침 이씨는 일찍 목욕탕에 다녀왔고, 밤 12시반에 퇴근했는데도 상사와 술자리를 가진 것도 이례적이다. 이씨 죽음 직전에 대화를 나눴던 해당 상사는 이씨 죽음에 별다른 얘길 하지 않고 있다.

▲ VFX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인 덱스터스튜디오. 사진=덱스터스튜디오 홈페이지 갈무리
▲ VFX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인 덱스터스튜디오. 사진=덱스터스튜디오 홈페이지 갈무리

죽기 전 이씨는 곳곳이 아팠다. 지난해 5월 두차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기록이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해당 병원장을 찾아 어떤 치료를 받았냐고 물었고 원장은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불면증을 호소했다’고 했다. 그는 “하루 14시간 이상 앉아서 일 하다보니 그런 거 같은데 요추·경추 치료기록이 있었고, 치질수술도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 이씨와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지난달 25일 각각 이씨의 산업재해(노동재해)를 신청했다.

열악한 CG업계, 변하지 않는 회사

CG(Computer Graphic)업계라고도 불리는 VFX업계는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CG업계에는 노조가 없다. 영화 ‘마녀’ ‘안시성’ 등의 후반작업을 맡았던 ‘위지윅스튜디오’에서 주 70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던 30대 직원 유아무개씨가 지난 1월 사망했다. 유씨는 사망 전날에도 약 15시간을 일했다.

이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왔다. 청원인은 “30대 직원은 상장을 위해 희생된 건지 아니면 단순 사망사건인지 진상을 알고 싶다”며 “한 CG회사는 작업에 매달릴 땐 하루에 2시간 밖에 잠을 못 자고 일주일 내내 야근할 때도 있다는데 다른 업체도 다르지 않다”고 썼다.

현장스태프를 중심으로 만든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안병호 위원장은 “영화 후반작업하는 분들이 야근·밤샘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많이 들려오지만 조합원이 없어 해결이 어렵다”며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덱스터에서 연봉은 협상이 아닌 통보로 결정됐고, 혹시 회사 쪽에 밉보이면 까다로운 일이 배정될까 눈치 본다는 게  덱스터에서 일했던 B씨의 증언이다. 

직원들은 창작자가 아닌 부품처럼 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CG를 넣으려면 편집본 전체를 보고 스토리를 이해해야 하지만 덱스터에선 편집본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왜 이런 CG를 넣는지 모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힘들게 마무리했는데도 수정 지시가 내려오면 다시 답답한 상태가 이어졌다. 자율성이 떨어지니 업무 스트레스는 커졌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병원에 가는 직원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B씨는 이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파이팅 넘치고 안 되는 거 있으면 끝까지 해보려는 열정있는 직원이었어요. 새벽 2~3시에 퇴근할 때도 많아 각자가 힘들어 누굴 살필 정신도 없었던 거 같네요.” 이씨는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던 직원이었다. CG업계 전반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B씨는 “영화 쪽보단 광고 쪽(후반작업 회사들)은 더 심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VFX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인 덱스터스튜디오가 작업했던 작품들. 사진=덱스터스튜디오 홈페이지 갈무리
▲ VFX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인 덱스터스튜디오가 작업했던 작품들. 사진=덱스터스튜디오 홈페이지 갈무리

업계에서 최초로 상장했고 가장 큰 회사인 덱스터에도 노조가 없다. 이씨와 함께 입사했던 A씨 역시 덱스터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지쳐 이직했다. B씨는 “포괄임금제인데 처음 입사하면 최저시급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덱스터 뿐 아니라 업계 대부분이 포괄임금제였다. 이씨 연봉계약서를 보면 월급 약 200만원에 연장수당 약 20만원과 야간수당 약 3만원 등이 이미 더해져있다.

오전 10시 출근해서 밤 12시, 늦으면 새벽 2~3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이씨 업무일지를 보면 그날 업무를 올려놓은 시각이 10월2일의 경우 밤 11시26분, 10월11일 밤 11시23분, 10월15일 밤 11시30분 등이었다. 이는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그날 업무를 올려놓은 시각이라 퇴근은 더 늦게 이뤄지고, 밤 12시가 넘는 경우엔 따로 올리지 않아 업무일지에선 확인하기 어렵다.

이씨 유족은 회사에 이씨 출퇴근 기록 등을 요청했다. 미디어오늘도 지난 5일과 8일 이씨 출퇴근 기록을 덱스터에 요청했다. 사망원인을 추정할 단서이면서 CG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확인할 기록이라서다. 

이씨가 떠났지만 회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B씨에 따르면 회사 측은 이씨 사망 직후 퇴근을 일찍 시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엔 원상태로 돌아갔다. 미디어오늘은 영화 ‘신과함께’ 흥행 이후 이씨가 연봉인상을 요구했는데 왜 이를 거부한 채 과중한 업무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장례비용을 부담했지만 이후 보상협의엔 부정적이었는지, 이씨 사망 이후 덱스터가 취한 장시간 노동 방지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질문했다.

※ 기사 수정 : 2019년 4월9일 오후 18:25

덱스터 측은 기사 출고 이후인 9일 오후 “우선 덱스터의 가족이었던 故 이윤혁씨의 사망에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미디어오늘에 입장을 보냈다.

덱스터는 ‘임금이 동결됐다’는 주장에 대해 “지난해 초 덱스터는 직원들의 수고에 보답하고자 350여명의 전 직원에게 격려금을 지급했다”고 반박했다. A씨는 당시 1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후에 이 금액이 연봉에 포함되는 금액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연봉이 오르는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퇴근기록 요청에 대해 덱스터는 “덱스터에는 여러 부서가 있고 이씨가 근무한 VFX 본부에도 여러 공정의 부서가 있다”며 “각 부서마다 프로젝트 스케줄은 유동적이기에 근태는 각 본부 및 팀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으며 별도로 체크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상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가 든 보험금을 포함해 금전적 지원이 있었으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덱스터는 “장례비용과 회사 보험으로 인한 사망보험금 등을 지원했고 산재보험 신청 요구 등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며 “장례식 이후 지속적인 추가 보상 요청에 대하여 덱스터는 이씨 한 사람의 가치를 일정 금액으로 환산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고 산재 판정 이후에 다시 논의를 하자고 해 기다리는 중”일 뿐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아버지 이씨는 “보험회사에서 지급한 사망보험금나 산재보험이 있으면 회사가 보상을 안 하고 (사망보험금·산재보험금 등이) 없으면 보상하겠다는 식”이라며 “여전히 3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회사의 책임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덱스터는 CG업계 전반의 문제를 느끼고 노동환경 개선에 힘쓰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덱스터는 “윤혁씨의 사망이 아니더라도 이미 변하고 있고 더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며 “신입사원 초봉을 업계 내 가장 높게 인상했고 연봉 체계 또한 매년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덱스터는 오는 7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적용한다”며 “노무사와 함께 제도적 장치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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