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방송사의 재난방송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정부가 재난 방송을 뒤늦게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이 각 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재난방송 관련 자료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화재 다음 날인 4월5일 새벽 1시10분이 돼서야 각 방송사에 재난방송을 요청했다. 전날 밤 11시15분 청와대가 관계부처에 재난 대응을 주문하고 2시간 가량 지난 시점이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재난 또는 재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난 방송을 요청할 권한을 갖고 있다. 방통위는 이를 구체화해 2017년 재난방송 매뉴얼을 마련하고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방통위가 조속히 대처했다면 방송사 재난방송이 더 빠르게 나올 수 있었다. 

▲ 방통위, 과기정통부 온라인 재난방송 대응 체계.
▲ 방통위, 과기정통부 온라인 재난방송 대응 체계.

재난 방송 요청 방식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방통위는 5일 새벽 1시10분 방통위 재난담당 사무관이 소관 68개 방송사 관계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요청했다. 메시지는 “강원도 고성, 속초에 대형 산불이 지속됨에 따라 긴급 재난방송을 실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로 전달하면 방송사의 즉각 수신이 힘들다는 지적에 방통위 관계자는 “그런 것들은 정비 하겠다”고 했다.

수어방송 요청도 늑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방통위는 화재 다음 날인 4월5일 오전 11시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등 주요 10개 방송사에 수어방송을 요청했다. 장애인을 위한 대피 정보가 필요했던 4일 밤과 5일 새벽이 한참 지난 시점이다. 지상파의 경우 방통위 요청 전인 KBS 오전 8시, MBC 오전 8시30분, SBS 오전9시50분부터 수어 방송을 실시했다.

화재사고, 특히 산불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제대로 담지 못한 재난방송 매뉴얼이 미비한 문제도 있다.

과거 지진 사고 때마다 재난방송이 논란이 되자 정부는 2017년 재난방송 종합 매뉴얼을 제정하고 각 방송사에 배포했다. 그러나 매뉴얼은 지진, 해일 등 재난에 초점이 맞춰져 산불과 관련한 대응 방안은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

▲ 강원도 속초시 화재 현장. 사진=노컷뉴스.
▲ 강원도 속초시 화재 현장. 사진=노컷뉴스.

재난방송 매뉴얼의 재난은 지진, 지진해일, 호우경보, 대설경보, 사회적 재난으로 나누는데 ‘화재’, 특히 ‘산불’은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지진의 경우 각 단계별 방송사의 대응 조치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만 산불의 경우 이 같은 절차가 없다.

재난방송 매뉴얼과 재난방송 고시는 지진 5.0 이상일 경우 경고음 방송과 외국어 방송을 하도록 하는데 산불은 관련 내용이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산불은 ‘사회적 재난’에 포함하고 있어 부각하지 않았던 것”며 “재난방송 매뉴얼 표준안은 주기적으로 개정하고 있다. 산불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관련 방송을 점검해 상반기에 보완하려고 한다. 수어 방송 역시 권고하는 방안을 담당 부서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의원은 “최근 지진, 화재 등 국가적 재난이 반복되는 와중에 국민에게 신속한 정보를 알려야 할 재난방송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며 “촉각을 다투는 재난에는 방송사에 협조요청을 24시간 전달하는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하고, 수어방송 등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방송을 강제하는 규정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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