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인권위)가 최근 정신질환자·성소수자 혐오 등을 경고하는 입장을 냈지만 최근 국회나 대학 의사결정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인권위 권고에도 정신질환자 혐오에 편승한 국회

정신질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 퇴원 사실을 공유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5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고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사망하면서 정신질환자 혐오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회가 이를 계기로 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 이들을 통제하는 법안을 통과한 것이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52조를 보면 정신의료기관장이 환자의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나 보건소장에게 통보할 때 반드시 당사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한 개정안은 자·타해 행동으로 입원한 사람은 퇴원시 본인 동의 없이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인권위는 지난달 20일 해당 법안에 “환자의 퇴원 사실을 동의없이 공유하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이는 국제적 기준과 국내법 기준에서도 인정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동료의사가 고 임세원 교수를 추모하며 그린 그림.
▲ 동료의사가 고 임세원 교수를 추모하며 그린 그림.

국회가 정신질환자 혐오 분위기에 편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여당은 ‘임세원법’이란 이름으로 정신질환자의 동의없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강제입원(비자의입원)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 임세원 교수 생전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해 ‘반임세원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관련기사 : 민주당의 ‘임세원법’은 반(反)임세원법?]

인권위 권고 무시하는 숭실대·한동대

기독교를 건학이념으로 내세운 대학들도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지난 1월7일 인권위는 숭실대와 한동대가 건학이념을 이유로 대학 내 성소수자 관련 강연회·강의실 대관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집회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숭실대는 지난 2015년 학내 성소수자모임 ‘이방인’이 성소수자 결혼식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려는 걸 제지했고, 한동대는 지난 2017년 교내에서 성소수자 강연을 주최했던 학생을 무기정학·특별지도 처분했다. 이에 인권위는 숭실대에 앞으로 대관시설을 허용할 것을 권고했고, 한동대에는 학생징계를 취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숭실대는 인권위 권고 두달이 채 안된 지난 2월28일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의 모임 홍보 현수막 설치를 불허했다. 대학 설립이념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이방인이 학교 측을 비판했지만 숭실대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 '한동대학교를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해 1월12일 오전 한동대학교 정문 앞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학교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의 교육철학을 지지한다', '한동대의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을 끝까지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한동대의 교육철학을 비난하는 외부단체응 위협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등의 요구사항을 밝혔다. 사진=노컷뉴스
▲ '한동대학교를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해 1월12일 오전 한동대학교 정문 앞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학교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의 교육철학을 지지한다', '한동대의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을 끝까지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한동대의 교육철학을 비난하는 외부단체응 위협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등의 요구사항을 밝혔다. 사진=노컷뉴스

한동대 역시 인권위 권고를 무시했다. 지난 1월22일 한동대 학생회는 인권위 결정이 교육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권고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후 일부 숭실대·한동대 교수들은 인권위 앞에서 ‘동성애동성혼반대 단체’들과 인권위 규탄집회를 하는데 참가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혐오를 종교의 자유 등을 이유로 강행하겠단 뜻이다.

인권위는 숭실대를 다른 이슈로도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5일 “종립학교 교직원 채용시 비기독교인을 배제하지 말라는 인권위 권고, 숭실대 불수용”이라고 보도자료를 내 숭실대를 비판했다. 인권위는 “진정사건 조사 과정에서 기독교 이념으로 설립된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 교직원의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도 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7일 “숭실대학교가 교직원 채용 시 모든 교직원의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종교를 이유로 한 고용차별”로 판단했다. 이에 숭실대학교 총장과 학교법인 숭실대학교 이사장에게 교직원 채용 시 종립학교 설립 목적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독교인으로 자격제한을 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대학이라는 특수성이 있더라도 교직원 채용 시 비기독교인을 모든 경우에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직업안정법·국가인권위원회법을 위배하는 것으로 합리적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

숭실대는 “학교설립목적이 ‘기독교 신앙과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의거하여 국가와 사회 및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적 인재를 양성함’에 있기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교직원의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고 대학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인권위 권고에 반대했다.

인권위 권고가 강제력이 없어 제재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수사기관이나 재판 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어 권고 수용률은 90%를 넘길 정도로 높다. 권고를 아예 무시한 사건의 경우 대중의 통념이나 종교신념을 기반한 소수자 혐오가 다수인 것을 감안해 인권위는 최근 ‘혐오차별대응 특별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