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마. 네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너는 지금 반찬 투정할 때야? 나가! 나가라고”

수호 엄마 순남은 오빠 옷만 사 와서 토라진 동생 예솔이 반찬 투정을 하자 나가라고 소리쳤다. 내복만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난 예솔은 목 놓아 울었다. 수호 엄마도 식탁 앞에서 가슴을 쥐고 내쫓아버린 딸과 함께 울었다. 수호네 가족은 아직도 2014년 4월16일을 살고 있다.

▲ 산재 및 사고로 고인이 된 분들을 위해 영화 ‘생일’을 관람한 유가족들이 함께 일어나서 묵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 세월호참사로 딸을 잃은 윤경희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생명안전 시민넷 활동가,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은 최영도씨) 사진=박서연 기자.
▲ 산재 및 사고로 고인이 된 분들을 위해 영화 ‘생일’을 관람한 유가족들이 함께 일어나서 묵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 세월호참사로 딸을 잃은 윤경희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생명안전 시민넷 활동가,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은 최영도씨) 사진=박서연 기자.

수호 엄마 순남, 아빠 정일, 동생 예솔, 옆집에 사는 친구 우찬, 우찬이 엄마, 수호가 물 밖으로 밀어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은빈, 단짝 성준 등 영화 속 수호와 관련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수호를 잊지 못한 채 산다.

하지만 영화는 한 번도 ‘4·16 세월호 참사’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날의 참사를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수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 속 수호네 가족처럼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지난 5일 저녁 7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 함께 모여 영화 ‘생일’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영회는 생명안전 시민넷과 반올림, ‘생일’ 영화사가 마련한 자리였다.

4·16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현장실습 사고,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유가족 어머니 김미숙씨,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가족 아버지 황상기씨, tvN 고 이한빛 PD 유가족 등 총 140여명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흐느꼈다.

영화가 슬픔을 ‘담담히’ 그려낸 것처럼 관객들도 120분의 시간 동안 ‘내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은 슬픈 감정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지우지 못했다. 서로를 토닥여 줬다. 영화가 끝난 직후 ‘작은 이야기 마당’이 마련돼있었지만, 15분 정도 감정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어쩌다 유가족이 됐을까?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는 “두 번째 보는 거라 안 슬플 줄 알았는데 또 울어버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발언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윤경희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가 영화 ‘생일’을 관람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가 영화 ‘생일’을 관람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윤경희씨는 “‘내가 어쩌다 세월호 유가족이 돼서 마이크를 잡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자체가 너무 서럽다. 5년이 다 되도록 한 명의 책임자도 처벌하지 못한 채 아이들의 5주기를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다른 참사 유가족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말하며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윤씨는 “저희 아직도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못 했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데 그런 장면이 이 영화에 없어서 아쉽긴 해도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잘 담아줘서 감독에게 고맙다. 어려운 영화 찍어준 배우들도 고맙다. 우리 아직 안 끝났다고 이제 시작하는 거라고 국민에게 이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하자 관객들은 큰 박수로 응원해 줬다.

유가족은 우는 게 맞나요 웃는 게 맞나요?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도 “두 번째 보는 거라 눈물 안 흘릴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왔다”며 “세월호 영화임에도 감독이 많이 절제한 것 같다. 나도 저랬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 이입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재영씨는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호 동생인 예솔이가 물에 안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저는 사고 후 4년간 지하철을 못 탔다”면서 “제3자가 볼 땐 유가족들이 ‘울어야 할까요? 웃는 게 맞을까요?’”라고 물었다.

전씨는 둘 다 맞다고 스스로 답하며 “본인이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게 맞다. 제3자는 그렇게 안 본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고 한다. 같이 슬퍼해 주지는 못 해도 가족 잃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애가 죽으면 거기서 시간이 멈춘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영화를 보낸 내내 제가 당하고 있던 것들이 다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참담했다. 유가족들은 애가 죽으면 거기서 다 멈춰버린다”며 “4개월이 지났는데 용균이 영정사진을 보면 내가 용균이 같고 용균이가 나 같은 마음이 든다”고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미숙씨는 “진상규명이 꼭 제대로 돼야 한다. 책임자들을 꼭 처벌받게 하겠다. 서부발전 그 기업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라 정치가 잘못돼 자식들이 죽었다. 저는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가 행복해지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 영화 ‘생일’을 함께 본 유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영화 ‘생일’을 함께 본 유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4월22일 유미 생일이다. 수호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는데 유미 엄마도 우울증에 걸려 똑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황상기씨는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사례가 상당히 많다. 엄청 많은데 피해자를 낳은 공무원은 한 명도 처벌 안 했다. 정부에서는 이렇게 많은 수천 명의 피해자를 낳은 삼성에 천억이 넘는 돈을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을 지적했다.

최영도씨는 2011년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었다. 최영도씨는 “저 역시 이 자리에 나올 줄 몰랐다. 제 딸도 경우 없이 사고를 당했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4년간 싸우며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임을 밝혀냈다”며 “영화는 사건의 기록이자 결국엔 치유가 이뤄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치유하는 과정은 다들 다르다. 누구든 재난 참사를 당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이 희생자 가족들을 잘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영화 ‘생일’ 포스터. 사진=NEW
▲ 영화 ‘생일’ 포스터. 사진=NEW

2015년부터 안산을 방문해온 이종언 ‘생일’ 영화감독은 “참사로 인해 무너졌던 마음과 변해버린 일상들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한다. 더 많이 보고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 관람을 직접 신청해 보러온 고등학생들은 퉁퉁 부은 눈으로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재범(15)씨는 “저는 프랑스에서 살다 한국에 왔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프랑스 와서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셨다. 제 어머니가 번역으로 활동을 도왔다. 한국에 와서 세월호 참사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도 방문했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태건(15)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에서 보도하고 그랬던 게 기억난다. 지나고 보니 진상도 안 밝혀지고 있다. 솔직히 세월호 이야기가 지겨웠던 적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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