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의 줄거리가 등장합니다.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후보작이 4일 공개됐다. 관심을 모으는 최우수연기상 여자 부문후보에 김서형·염정아(JTBC ‘SKY캐슬’), 김태리(tvN ‘미스터 션샤인’), 이지은(tvN ‘나의 아저씨’), 그리고 김혜자(JTBC ‘눈이 부시게’)가 올랐다. 김혜자는 역대 최고령 후보자다. ‘눈이 부시게’는 드라마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눈이 부시게’는 12부작으로 3월19일, 9.7% 시청률로 종영했다. 갑작스레 25세에서 70대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라고해서 흔한 SF-멜로드라마로 생각했던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는 거대한 반전을 보여줬다. 이 드라마는 처절하고, 비참하며, 외로운 노년의 삶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 김혜자.
▲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 김혜자.
‘눈이 부시게’는 노동자 파업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송곳’의 김석윤PD가 연출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송곳’만큼 독특했다. 우선 77세 여배우 김혜자를 주인공으로 끌고 가는 ‘모험’을 택했다. 너무나 흔해진 스마트폰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서울 어딘가의 허름한 가난한 동네가 극의 주요공간으로 등장했다. 여기선 우동과 소주 한 잔이 사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선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에 대한 새로운 서사가 등장했다. 우리가 흔히 접해온 드라마 속 알츠하이머 노인은 늘 극의 변두리에 있었다. 주인공의 역경을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했거나, 또는 갑자기 기억이 돌아와 주인공의 복수를 돕는다는 복선의 장치로 활용되었다. 또는 아이처럼 변해버린 행동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달랐다.

극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수동적이지만 능동적이며, 정체되어있으나 적극적이다.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극의 절정에서 보여준 ‘요양원 어벤저스’가 그러했다. ‘치매’는 때론 ‘길고 행복한 꿈’일 수 있다는 걸 25살 혜자(한지민 분)의 달달한 연애와 설렘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혜자(김혜자 분)는 곧 꿈에서 깨어나 어둠속 침대에 쓰러져 동물처럼 목 놓아 절규한다. 혜자의 현실을 ‘견뎌내는’ 이들은 말없이 눈물을 삼킨다. 수십 년 전 남편에게 건넸던 시계를 찾고자 집착하는 혜자의 모습은 되돌리고 싶은 시간, 되찾고 싶은 젊은 날에 대한 간절함을 의미했다. 동시에 허망하게 잃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뜻했다. 그러나 혜자는 결국 시계로 시간을 되돌리길 포기한다.

▲ JTBC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 JTBC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나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즐거웠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모든 기억으로 버티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혜자에게 ‘기억’은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다. 혜자는 불행했던 기억까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우린 늘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러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깨닫는다.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행복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우리가 그저 고통스러운 오늘이 가기만을 바라며 행복을 유예하고 다다를 수 없는 욕망을 쫓고 있었던 사실을. “너도,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혜자가 이수한(남주혁 분)에게 건네는 이 한 마디에 드라마의 모든 게 담겨 있다.

▲ JTBC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 JTBC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손석희 앵커는 3월20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모두에게는 언젠가 눈부신 젊음이 존재했으며 설사 그 반짝임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오늘의 삶은 늘 눈이 부신 시간이라는 잠언적인 메시지는 주름진 배우의 아름다운 연기를 통해 스미듯 먹먹하게 다가왔다”고 전한 뒤 “때로는 드라마 한 편이 백 번 천 번의 뉴스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깊이 생각하게 해주고 그것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한다는 말에 동의하며…”라며 드라마에 찬사를 보냈다.

저널리즘의 목적이 우리의 일상과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면,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근래에 등장한 가장 눈부신 인터렉티브 저널리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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