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연구’ 토론회에서 방송 산업 비정규직 실태와 통신서비스 산업 고용구조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자들은 방송과 통신서비스 산업 모두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고용과 관리를 외주업체나 협력업체에 맡기고,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방송 제작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더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노무사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고 매출 급감과 경쟁자 출현에 따른 공백을 비정규직 인력 채용으로 메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 5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 연구' 발표가 진행됐다. 사진=정민경 기자.
▲ 5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 연구' 발표가 진행됐다. 사진=정민경 기자.
특히 CJ ENM 자회사 ‘스튜디오 드래곤’ 사례를 들며 “수십 억 원이 투입되는 소수 대작으로 승부를 거는 ‘텐트폴 전략’으로 제작비 절대 비중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보다 스타급 배우 출연료, 마케팅 비용, 특수 효과 등에 집중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파견 인력 증가, 지상파 외부 프리랜서 시장 확대, 대형 파견업체 등장 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방송 제작은 ‘프로그램 단위’로 고용되고 총 제작비에서 임금을 받는 ‘바우처 노동’ 사례가 많다. 특히 제작사 등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제작 현장 스태프의 경우 ‘턴키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이들 인건비는 장시간 노동과 무관하게 장비 임대료 등과 묶여 저가로 책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업종에서는 유동적 제작 현장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초단기로 고용되는 인맥 기반 ‘호출 노동’도 매우 흔하다”며 “방송사와 제작사의 이런 불공정한 계약 관행은 ‘방송 바닥은 원래 그래’라는 생각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김 노무사는 방송 제작 노동 환경이 개선되려면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 노동법 적용 △부처별 분산된 관리 감독 권한 조율(방송 사업자 관리와 감독 권한이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 개선) △정확한 비정규직 실태 조사와 처우 개선 방안 도출 △노동시간 단축과 맞물린 방송스태프 노동 인권 찾기 등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정기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현재 드라마 제작 환경을 중심으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국과 제작사들과 함께 협의가 진행 중이나 이런 논의가 CJ ENM이나 종합편성채널에 적용되기 힘든 상황”이라며 “방송 제작 노동 환경 개선 가이드라인 등이 만들어질 경우 전체 방송 산업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신서비스의 경우 유무선 통신 가입자의 포화로 영업 이익이 줄어들자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핵심 서비스를 외주화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외주업체 혹은 개인 도급 형태로 활용돼 왔다. 특히 ‘자회사 정규직화’ 정책을 진행한 KT는 고용은 안정시켰지만 노동 조건은 크게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KT 자회사들은 KT와 독립적인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KT 현장 부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KT 통신 산업의 핵심은 자회사 등을 이용해 고용과 업무를 외부화한 뒤 간접 고용 관계를 맺고, 그 계열사나 협력업체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비용을 절감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T의 통신서비스 관련 자회사는 KT서비스남부, KT서비스북부, KTis, KTcs, KT M&S 등 5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탁 변호사는 “고용 구조가 복잡하다보니 노동자들은 이중삼중의 통제와 감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휴가를 내려고 해도 본청인 KT와 근태 관리를 하는 KTcs, 실제 근무처(하이마트 등)에도 동시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통신 산업은 공공성을 갖고 있는데, 공공성이 아니라 효율성 논리로 외주화를 하면서 위험을 자회사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권리가 없는 자회사와 협력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에 최근 아현동 통신구 화재처럼 제대로 된 관리와 대처가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신 공공성을 위해서라도 KT가 직접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는 KT에 직접 고용을 요구해야 한다. 그룹사에서 다른 자회사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경우 단체교섭 사용자로 책임을 지우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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