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보시다시피. 유령도시죠.” 목적지에 다다르자 택시기사가 말했다. ‘국내 1호 영리병원’ 명성을 얻고 숱한 논란을 낳은 현장은 조용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께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에 위치한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국제병원(녹지병원)을 찾았다.

녹지병원은 크지 않았다. 47개 병상 도입을 목표로 지하 1층과 지상 3층 구조로 지어졌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위에 쇳줄로 된 자물쇠로 손잡이를 감았다. 밖에선 모래주머니를, 안쪽에선 의자 20여개를 줄지어 놔 아무도 문을 열지 못하도록 막아뒀다. 병원 안과 주변에선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 지난달 30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30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본 로비엔 사람‘만’없었다. 시설은 내부까지 완공돼 있었다. 커피숍에서 사용할 만한 테이블들과 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다. 복도 끝 화장실 앞에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바닥 미끄럼 조심’을 경고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녹지그룹은 이미 지난해 7월 병원 공사를 끝냈다.

제주헬스케어타운은 제주4‧3 이후 지금까지 비어 있던 한라산 중산간에 지어졌다. 이승만 정부는 지난 1948년 겨울 한라산 전역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을 내려 바닷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후 산들로 남아 있는 곳에 국토교통부는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려는 핵심 사업으로 헬스케어타운을 짓기로 했다. 외국인 영리병원은 “헬스케어타운에 ‘헬스’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뒤늦게 헬스케어타운사업에 포함됐다.

▲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아닌 게 아니라 병원 주변에 세워지는 건물은 모두 휴양관광시설이다. 쇼핑몰과 호텔, 리조트, 콘도미니엄, 워터파크 등이 조성 중이다. 녹지병원 정문 건너편에 위치한 휴양리조트는 현재 운영 중이었다. 데스크에서 접수원 1명이 자리했고, 리조트 앞에만 차들이 6대 주차돼 있었다.

영리병원 서쪽 콘도미디엄 두 동에도 중국인들이 입주했다. 헬스케어타운에는 일명 ‘투자이민제’로 제주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있다. 제주도는 2010년 투자이민제를 도입하면서, 콘도미니엄을 5억원 이상 사들인 외국인에게 거주비자를 발급해주고 있다. 5년 후엔 영주권(F-5)을 준다.

병원사업 시행자인 녹지그룹은 제주도가 정한 개원 시한인 지난달 4일까지 병원 문을 열지 않았다. 이에 제주도는 지난달 26일 개원허가 취소를 위한 청문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영리병원은 절대로 안 된다니까요.” 차를 몰고 헬스케어타운을 지나던 50대 제주도민 양씨는 손사래를 쳤다. “여태 제주도에 처음 도입한 정책들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어요. 좋은 사업이건 나쁜 사업이건 간에요.”

▲ 지난달 30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국제병원 건너편엔 휴양리조트가 운영 중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30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국제병원 건너편엔 휴양리조트가 운영 중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부가 제주도에서 최초로 시행한 사업은 많다. 지난 2010년 전자주민등록증을 제주도 전역에 처음 실시한 뒤 5년에 걸쳐 전국에 도입했다. 시외전화 국번을 통일하는 사업도 지난 1998년 제주도부터 차례로 시행했다. 그래서 제주도는 ‘테스트베드(Testbed‧시험대)’ 도시라고 불린다. “그런데도 영리병원을 어떻게 제주도만 세워요? 장사가 안 될 텐데 어떻게 외국인만 받아요? 당연히 전국으로 퍼질 수밖에 없죠.”

실제로 제주에 영리병원이 문을 열면 ‘내국인 진료 제한’이 지켜질 공산은 낮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외국인만 진료’를 조건으로 개원을 허가했다. 이후 녹지병원은 시한 내 개원을 하지 않고 제한조건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의료법은 환자의 진료거부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도민들은 ‘영리병원 전문가’였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또다른 택시기사 B씨는 녹지그룹이 병원 사업 경험이 없는 중국 국영 부동산투자회사라는 사실을 읊었다. 현재 취소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냐고도 되물었다. B씨는 “도민들은 영리병원에 계속 반대해 왔는데, 원희룡이 한 것 아니에요. 이제 문 안 열면 도가 손해배상하게 생겼어요”라며 걱정했다.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도민들은 그냥 다 안다”고 했다.

제주도는 이달 안에 녹지그룹의 청문 의견서를 검토한 뒤 녹지병원 개설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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