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의 SBS 경영 장악 시도에 노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25일 태영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SBS 경영 장악이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SBS 이사회에서 윤 회장과 가까운 인사가 수장인 SBS 경영본부에 경영기획·관리 및 자산개발까지 몰아주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이사회 의장(현 박정훈 SBS 사장) 교체를 시도하는 등 지난 2월20일 노·사·대주주 합의와 ‘경영과 소유 분리’ 원칙이 일거에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SBS사옥 로비에서 대주주의 경영 개입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SBS사옥 로비에서 대주주의 경영 개입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런 가운데 대주주의 SBS 경영 개입 논란을 촉발시킨 3·28 이사회의 핵심 안건들이 모두 윤 회장 지시였다는 폭로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2일 노보에서 “당일 이사회의 핵심 의안은 모두 윤석민 태영건설 회장 지시였다”며 “경영 불개입 약속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노사 합의를 붕괴시킨 장본인이 윤 회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재 노조와 회사·대주주가 갈등을 겪고 있는 사안은 지난 2월 노·사·대주주 간 합의에 따라 SBS 자회사가 된 SBS콘텐츠허브의 경영권이다. 3자가 SBS 중심의 수직 계열화에 합의를 한 뒤 지주회사 SBS미디어홀딩스는 809억원을 받고 보유 주식 전부(1394만3122주·지분율 64.96%)를 SBS에 매각했다. 

SBS콘텐츠허브는 SBS미디어그룹 콘텐츠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기업으로 수익과 매출에서 그룹의 ‘알토란’ 역할을 했다. SBS 입장에서는 합병 등을 통해 이 회사를 내재화해야 수익 유출을 막고 실탄 장전을 할 수 있는 상황. SBS 자회사가 된 만큼 SBS가 콘텐츠허브 경영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나 대주주 태영의 윤 회장은 콘텐츠허브 이사진을 측근들로 채웠다.

언론노조 SBS본부에 따르면, SBS 이사인 최상재 전 SBS 전략기획실장은 3·28 이사회에서 윤 회장이 콘텐츠허브 이사회에서 SBS 인사를 완전히 배제하라고 직접 지시한 사실을 폭로했다. 또 최 전 실장은 SBS가 미디어홀딩스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당일 콘텐츠허브가 곧바로 이사회를 열어 새 주인인 SBS를 완전히 배제한 5인 이사회를 구성했으며 윤 회장이 향후에도 SBS 인사들을 허브 이사로 수용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최 전 실장의 문제 제기로 SBS 인사 일부가 콘텐츠허브 이사진에 포함됐으나 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이사 과반을 윤 회장 측근들이 장악하는 체제를 유지키로 해 SBS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노조의 분석이다.

이 밖에도 △콘텐츠허브와 드라마 스튜디오의 합병 시도 △SBS 이사회 의장 교체 시도 △임금과 노사간 단체협약을 이사회 의결 사항으로 바꾸려는 시도 등 3·28 이사회 전후로 논란이 됐던 사안 모두 윤 회장 지시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영과 소유 분리’라는 대원칙이 윤 회장 취임 후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 아버지인 윤세영 명예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퇴임 담화문에서 “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를 선언한다”며 “대주주가 향후 SBS 방송, 경영과 관련해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SBS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더 이상 정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대주주가 마음을 먹은 듯하다”며 “윤석민 회장은 과거 노조 등 반발에 3~4번 SBS 밖으로 쫓겨났다. 마음속에서 칼을 갈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물러난 만큼 이제는 본인 뜻을 관철할 기회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해석했다.

SBS 노·사·대주주는 지난 2017년 10월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하는 등 경영과 소유 분리 원칙을 최소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윤 회장이 SBS 경영 개입에 강한 의사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무력화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제공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제공
언론노조 SBS본부는 2일 노보에서 “윤 회장이 임금과 노사 간 단체협약까지 이사회 의결 사항으로 바꾸려 시도했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단협에 포함된 각종 조합원 권리 보호 조항과 임명 동의제 합의 등도 윤석민 직할 이사회를 통해 전부 사문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순히 노사 관계 자율성을 파괴하는 수준을 넘어 지금까지 SBS 구성원들의 땀과 피로 이룬 모든 방송 독립의 제도적 장치들을 일거에 허물겠다는 신호탄”이라며 “일단 전략기획실 반대에 부딪혀 3·28 이사회 안건에서 제외됐으나 조직을 장악한 윤석민·박정훈 체제는 언제고 이를 다시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SBS 사측은 3·28 이사회 사태와 2일 노보 등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