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 약화와 관료의 벽에 둘러쌓인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애정을 갖고 비판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오후 2시부터 3시50분까지 1시간50분간 청와대 영빈관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80여명과 국정과제와 향후 추진 방향을 두고 열띤 논의를 주고 받았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이날 시민사회단체와 문 대통령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한 부대변인에 따르면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권 초반 각 부처마다 적폐청산과 개혁 논의가 활발했고,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고 다양한 개혁 조치들이 반영되기를 기대했다”면서 “100년을 이어갈 중장기 재정개혁 로드맵을 만들겠다던 재정개혁특위는 관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수많은 위원회 논의가 유명무실해졌거나 행정을 집행해왔던 관료들 벽을 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많다”며 “공정거래법 시행령과 상속 및 증여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일감 몰아주기를 최소화하는 등 법 개정을 통하지 않고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추진할 재벌개혁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백미순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성이 국민의 절반을 이루지만 여성 대표성은 과소 대표되는 상황”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고, 여성할당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단체로 초청받은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는 “언론 보도에 문재인 정부 최초로 보수단체 초청했다는데, 신년회에도 초청받아 최초는 아니다”면서 “우리 연합 운영위를 개최하며 오늘 행사 참석 여부를 논의했다. 보수로서 들러리 서지 말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얘기를 하자로 의견을 모아 참석했다”고 했다. 이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양보, 타협, 합의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데, 다름을 인정해야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와 국민통합이 가능하다”며 “‘통일국민협약 추진사업’도 서로 다른 단체들 간에 토론 과정을 거쳤는데, 진영을 초월하며 다름을 인정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기범 대북민간협력단체협의회장은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대북지원 민간정책협의회’의 복원과 민관으로 구성된 ‘인도적 지원 제재 면제 승인 태스크포스팀’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명호 생태재평연구소 부소장은 ‘정부차원의 DMZ 보전 정책 확정’과 ‘남북 산림협력분과 회담의 환경 분야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부대변인은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의 경우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박옥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은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예산문제에 관심’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강화’와 ‘국민기초생활보장’, 교육비·주거비·의료비·통신비 등 경감 정책 등의 정책의지를 요청했다.

이선경 원주시민사회연대 대표는 “지방의 시민사회는 사회적 영향력에도 행정접근이 어려워 사후 비판 활동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지방정부에 ‘시민소통위원회’ 설치를 적극 권장해 주시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의무화시켜 달라”고 제안했다.

구자인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이사장은 “다양한 마을공동체 정책 사업들이 공무원 순환보직제와 정책 칸막이로 인해 오히려 마을자치의 기반을 훼손하는 상황”이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마을공동체 기본법’ 통과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관계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어찌 보면 운명적으로 비판하고 비판받는 관계, 이런 긴장적인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그런 관계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적어도 촛불혁명 이전의 시민사회와 정부의 관계가 일종의 반대자 입장에서 비판하던 그런 관계였다면 촛불혁명 이후의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정부에서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그런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고, 그다음에 그 비판에 대해서 보다 더 귀를 기울이는 동반자적인 관계, 이런 것을 가져 주셔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비판하는 것도 우리고 비판받는 정부도 우리의 일부”라며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함께 힘을 모아서 국가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단체로서 참석하는데 고민했다는 이갑산 상임대표의 견해를 두고 문 대통령은 “정말 그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조금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보수나 진보나 이런 어떤 이념은 정말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오로지 우리 사회 발전이나 국가 발전을 위한 어떤 실용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보라서 좀 더 정부와 가깝다든지 보수라서 조금 멀다든지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언제나 이렇게 파트너라는 생각을 해 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득주도성장, 노동자 소득 올려…일자리 둔화, 양극화해소 실패 주장 일리”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은 상당히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며 “국제노동기구(ILO)가 오래전부터 임금주도성장을 주창해 왔고, 오바마 대통령도 시정연설 이런 쪽에서 말한 적도 있다. 우리가 임금주도성장이라 하지 않고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임금 노동자 중심의 구조인 반면에 우리는 임금 노동자 못지않게 자영업자들이 많아 임금이라는 말로 다 포괄할 수가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이 최저임금을 높이자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신비라든지 교통비라든지 주거비라든지 여러 필수 생계비를 낮춰주고 일자리까지 늘려주는 여기까지가 다 포용되는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성공하고 있는지를 두고 “대체로 고용된 노동자들 소득수준이 높아진 것은 틀림없는 성과라고 보인다”고 답했다. 그는 “한편 일자리 늘어나는 것이 둔화된 것이 사실이고, 또 고용 밖에 있는 비근로자 가구 소득이 낮아져서 오히려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문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런 지적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 앞으로 노동에서 밀려나는 분들이 없고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되는 사회안전망까지 제대로 구축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한 시민사회단체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한 시민사회단체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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