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지난달 21일 경제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을 비판하는 자사 기자들의 대자보와 관련해 “책임은 편집국 대표인 제게 있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 경향신문 기자들은 지난달 11일과 18일 두 번에 걸쳐 경영진과 편집국장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당시 대자보에서 “경제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 사건의 핵심은 편집국장이 정부, 대기업과의 관계를 신경쓰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기자 77명은 “경제부 기자 3인이 지난해 말부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600개 기업 현황을 5개월간 취재 분석한 일감 몰아주기 기사를 기획했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일감 몰아주기 이슈가 뜨겁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기사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두번째 대자보가 나온지 사흘 뒤인 지난달 21일 이기수 편집국장은 입장을 밝혔다. 이 편집국장은 “충분한 소통과 피드백을 못 해준 책임은 편집국 대표인 제게 있다. 총체적 책임이 국장에게 있다는 뜻을 임명권자에게 전할 생각”이라며 “후배 기자들이 요구한 ‘경향의 미래 논의 기구’도 건의하겠다. 회사도 내부에서 준비해온 사안으로 듣고 있고, 참여 폭을 넓히고 속도를 내자는 뜻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편집국장은 “아쉽게도 압력이나 기사검열이라는 단어로 논의를 끝내기에는 수직·수평적으로 층층이 활성화돼야 할 편집국 논의 구조가 경직·위축될 수 있어 걱정이다. 엄혹한 이 시대, 독립언론의 자리매김과 전도에 대한 고민과 구성원들의 공유도 더 깊고 많아져야 한다. 출범할 공식기구에서 충분히 논의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편집국장은 “갈 길 멀지만, 저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된 독립언론 경향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위축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겐 겁 없이 응전하고 도전해온 DNA가 있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질 것이다. 서로에게 더 따뜻하고 당당하고 합심하는 편집국이 됐으면 한다”고 썼다.

경향신문 소속 A기자는 “대자보에 연명한 다수의 기자는 이기수 편집국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아닌 사람도 있다. 4월 초에 기자들이 입장을 한 번 더 낼 거다. 국장의 거취, 미래 논의 기구 설립 등에 대해 기한을 정해두고 답변을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소속 B기자는 편집국 안에서 이기수 편집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B기자는 “국장의 퇴진 사안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편집국장 대 평기자 갈등 양상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소모적 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B기자는 “새로운 국장이 온다고 한들 그 국장이 뭔가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나. 독립언론이라는 총의가 훼손되지 않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향신문도 광고 수익이 있을 텐데 재벌로부터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평기자들도 (사측이) 광고주로부터 탄압을 받는다고 하면 상여금을 반납하겠다는 의지라도 보여야 하지 않나. 결의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기수 편집국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들이 건의한 ‘경향의 미래 논의 기구’를 만들자고 사장에게 전했다. 회사에서 기구 구성은 할 것이다. 편집국 기자들도 의견 내고 논의해가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며 “기구 안에서 어떤 논의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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