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의 극치”(매일경제), “노동자 위원 3명이 경사노위 전체를 마비시켰다”(조선일보),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 근로자위원들은 이번 본위원회 무산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돌아봐야”(동아일보), “불참을 주도한 이남신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민노총 간부 출신”(국민일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노동자위원 3인이 본위원회에 2차례 불참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 의결을 막자 일부 언론이 비난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보수언론이 3인 대표의 보이콧에 이른바 ‘프로불참러’ 오명을 씌운 가운데 이들이 직접 경사노위 논의 구조에 근본적 문제 제기를 내놨다.

경사노위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를 맡은 청년유니온과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은 2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3인 대표는 경사노위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가 경영계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지고 정부가 이를 주도하는 동안 자신들이 ‘들러리’였다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 합의가 계속 탄력근로제 확대안의 경우처럼 이뤄지면 경사노위는 끝난다”고 경고했다. 동시간대 경사노위 소위원회는 이들을 배제한 가운데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전체회의를 열었다.

▲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위원을 맡은 청년유니온과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위원을 맡은 청년유니온과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청년 대표위원인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표 3인이 이번에 2차례 불참해 경사노위가 표류한다는 문제의식은 깊이가 얕다”고 지적했다. “경사노위를 둘러싼 갈등은 그간 쌓이고 쌓이다 이번에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경사노위 출범에 앞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법안을 일방으로 처리했다. 정기상여금이나 식비 등을 임금으로 치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법개정이었다. 경사노위 ‘1호 안건’인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도 경영계가 요구하고 정부와 국회가 주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안건이 국회에서 너무나 빠르게 합의되고 경사노위에서 논의됐다. 스텝은 이때부터 꼬였다”고 했다.

실질적인 합의 과정을 둘러싼 지적도 나왔다. 경사노위 소위원회는 그간 비공개로 열렸고, 이 때문에 소위에 들어가지 못한 계층별 대표 3인을 배제한 ’밀실합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혜진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아무리 세 주체(노사정)가 모였다고 주장해도 밀실이라면 세 사람의 대화이지 사회적 대화는 아니다. 이런 식으론 10명의 계층별 대표를 넣어도 의견 수렴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 대표위원인 이남신 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사회적 대화는 허울이었고 현실은 엄혹했다”며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했지만, 우리가 목격한 건 (한국)노총과 경총이 좌지우지하고 청와대와 노동부가 배후에서 조율하는 구조였다. 계층별 대표는 정말 들러리였다.”

▲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위원 단체가 28일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위원 단체가 28일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경사노위가 논의 중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우려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정부는 ILO 가입국이면서도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 강제노동 금지 등 협약을 28년째 비준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협약 비준을 공약했으나 경사노위 의제로 넘기면서 경영계의 ‘방어권 요구’에 부딪히고 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하는가. 우선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못 가진 기본권을 준 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맞다”고 말했다. 배진경 대표는 “노사는 그간 대화하지 않은 역사가 켜켜이 쌓였다. 가진 게 갖지 않고, 힘 균형이 맞지 않다.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힘을 실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실상은 이에 필요한 노동자 기본권을 놓고 흥정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대표위원인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ILO 협약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제 논의하려 하니 노동법 개악이 초점이 됐다”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남신 소장은 “앞으로도 탄력근로제 때처럼 합의할 공산이 높은데, 또 그렇게 합의하면 경사노위는 끝난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아낀다면 그렇게 합의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날 경사노위 공익위원 2명이 관객 토론에서 ‘경사노위를 신뢰하고 본위원회에 들어와 달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배진경 대표는 “경사노위 근본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데, 들어오지 않으면 끝난다는 주장은 패권주의”라며 “경사노위만 사회적 대화기구라고 하지 말라. 불참 자체가 대화”라고 일축했다.

한편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이날 오후 ILO 협약 비준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제노총과 유럽노총은 각각 27일과 28일 한국 정부를 향해 성명을 내 경총의 ‘방어권’ 요구안이 협약을 무력화한다고 규탄하고 정부에 ILO 핵심 협약을 우선 비준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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