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64.09%, 반대 35.9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표결 찬반결과다. 참석 주주의 3분의 2(66.66%) 이상의 동의를 받지 못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재벌 총수가 주총 표결을 통해 이사진에서 퇴출당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73.84%가 표결에 참여했다.

▲ 28일 자 종합일간지 1면.
▲ 28일 자 종합일간지 1면.

조양호 회장의 이사 재선임 실패에는 대한항공 2대 주주(11.70%)인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조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대기업 사주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사례인 만큼 28일자 아침종합신문은 1면에 일제히 ‘조양호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 소식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재하고 재계가 우려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담았다. 반면 한겨레와 서울신문, 경향신문 등은 시민사회와 소액주주들의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

다음은 28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조선일보 : 재계를 덮친 ‘국민연금 파워’

동아일보 : 조양호 밀어낸 국민연금 떨고 있는 294개 기업들
중앙일보 :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기업오너 첫 경영 퇴진
한겨레   :   재벌총수, 주주 손에 퇴출당하다
서울신문 : 소액주주 혁명… 갑질 총수 첫 해고
경향신문 : 총수 첫 퇴출… 재벌 자본주의 흔든 ‘주주혁명’
국민일보 : ‘오너 리스크’ 끌어내린 스튜어드십 코드
세계일보 : 국민연금, 조양호 밀어내다

▲ 28일 자 서울신문 4면.
▲ 28일 자 서울신문 4면.

조선일보는 1면에 “재계를 덮친 ‘국민연금 파워’”라는 제목으로 “재계에서는 ‘정치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민연금이 주도해 대표이사직을 잃게 하는 것은 매우 우려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소속이고 위원장을 현직 장관이 맡고있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보도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것을 들어 ‘기업가치 훼손,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며 반대했지만, 대한항공 측은 ‘재판 중인 사건은 무죄 추정이 원칙’이라며 반발해왔다. 국민연금은 지난 25일 일감 몰아주기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이사 재선임 안건에는 반대하지 않고 기권했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국민연금은 정권연금 아니다, 기업인 일탈 제재는 법으로”라는 사설 제목을 달고 “그러나 국민연금은 조 회장과 똑같이 배임 혐의로 기소된 다른 기업 회장의 재선임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고 기권했다. 이 기업은 남북사업을 하던 곳이다. 어떤 잣대로 칼을 휘두르는지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 28일 자 조선일보 사설.
▲ 28일 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국민은 노후 보장을 위해 보험료를 내는 것이지 정권이 힘자랑하라고 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다. 이러다 대한항공 경영이 악화되고 국민연금 수익률이 떨어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기업인 일탈은 관련 형법, 상법 등으로 제재할 수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조양호 밀어낸 국민연금 떨고 있는 294개 기업들”라는 제목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흐름에 기업들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경영진의 윤리적 행위가 주주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나친 반기업 정서로 실제 행위보다 과한 사회적 지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조양호 몰아낸 국민연금, 목소리 키운 만큼 독립성·전문성 갖췄나”라는 사설 제목으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면 그만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어서 정부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금본부가 지방으로 이전하고 보수도 시장 평균에 못 미쳐 자산운용 전문가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대한항공 사태…‘관제 스튜어드십’ 막는 독립성 확보 우선”이라는 사설 제목을 달고 “하지만 조 회장의 재선임 부결이 마냥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법원의 확정판결 전이라도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경영 능력과 무관한 개인의 일탈 행위를 문제 삼아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적잖은 기업들은 정권에 미운털이 박히면 제2, 제3의 대한항공으로 전락해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28일 자 한겨레 사진.
▲ 28일 자 한겨레 사진.

반면 한겨레는 1면에 “재벌총수, 주주 손에 퇴출당하다”라는 제목으로 “소액주주의 힘도 컸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상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 등은 조 회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140여명의 주주로부터 전체 주식 수의 0.54%의 위임장을 받았다. 이들은 ‘우리나라 소액주주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주주의 참여를 끌어낸 사례로,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주주 힘으로 ‘황제 경영’ 바로잡을 길 열었다”라는 사설 제목을 달고 “조 회장의 이사 연임 부결은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국민연금도 그동안 ‘주총 거수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번에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주주의 힘으로 경영진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회장은) 최대주주의 지위를 이용해 경영권을 계속 장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주총 뒤 ‘조 회장이 이사직을 상실했을 뿐 경영권을 박탈당한 게 아니다. 미등기 임원이라도 경영을 할 수 있고, 한진칼 대표이사로서도 경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공식 입장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다”라고 지적했다.

▲ 28일 자 경향신문 사설.
▲ 28일 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조양호 경영권 박탈, 재벌 총수 전횡 끝내는 계기 되기를”이라는 사설 제목으로 “이번 주주총회는 아무리 세습 대기업 총수라고 하더라도 주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경고를 경제계에 던졌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오너 개인의 힘으로만 일군 것이 아니다. 사원들은 물론 시민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다. 국가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거나 때로는 특혜까지 줘가며 성장시켰던 것 아닌가. 대기업 총수들은 이번 주총이 던진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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