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참이던 2017년 3월, 부산에서 TV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TV 토론회에는 안철수, 손학규, 박주선 3명이 참석했는데, 이 토론회에서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역 영남권’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손학규 후보는 “2050년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국가 목표로 설정하겠다”라며 “2030년까지 12개 원전의 설계수명을 단축하고, 2050년까지 13개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라고 했다. 같은 질문에 안철수 후보는 “고리 원전 반경 30km 이내에 인구 380만명이 산다”며 “수명이 다된 원전을 폐쇄하고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했다. 안 후보는 “계획된 원전을 백지화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주선 후보도 “형식적 내진설계, 안전도 검사를 할 것이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잠정중단하고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국민의당 모든 대선후보가 탈핵 정책을 지지했다.

당시 발언은 대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정당이 탈핵 정책을 공약을 채택했던 것의 연장선에 있다.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후보도 “아직 건설에 착수하지 않은 신규 원전 계획 자체를 중지시키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그는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찬성하지 않는다며 “신고리 5,6호기 역시 반드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 입장은 돌변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진행에 반대하는가 하면, 백지화된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 재추진을 계속 촉구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이 모인 바른미래당은 영덕 핵발전소 건설 사무소에서 현장 정책워크샵을 열고 “임기 5년짜리 정부가 어떻게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정책을 불과 몇 개월만에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냐”며 영덕 핵발전소 백지화계획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된 박주선 의원은 러시아, 중국, 인도 등 핵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며 “국내용 탈원전 정책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 지난해 12월10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회 로텐더홀에서 위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해 12월10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회 로텐더홀에서 위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중 1명인 손학규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대선 직후인 2017년 8월, 베트남에서 열린 강연에서 탈원전 정책 등을 언급하며 이런 정책들로 인해 경제성장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전에 자신이 밝힌 공약을 부정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탈원전 정책이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을 스스로 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중단하고 탈원전 정책 재검토 의지를 보여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대정부 질의 답변을 통해 ‘탈원전’이란 용어가 부적절하다며 정부 정책은 60년에 걸쳐 핵발전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춰가는 정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너무 느슨해 탈핵정책이라고 부르기 힘들다는 시민사회진영 입장을 정부 스스로 인정했다. ‘탈원전’이란 말을 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낙연 총리는 “선거 때 조금 과장된 언어를 쓴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당 정책은 여러 변수에 의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정책을 둘러싼 변수는 언제든 바뀔 수 있어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면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선거에서 공약이 국민과 한 약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약속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2017년 대선에서 핵발전소 폐쇄 정책을 밝혔다가 입장이 돌변한 정치인이나 이낙연 국무총리의 ‘과장된 언어’ 발언은 큰 틀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처럼 선거에 당선되기만 하면 선거공약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더구나 그들 스스로 국민 안전을 위해 탈핵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일어나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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