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관점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 언론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media)가 곧 언론으로 번역되는 현실에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취재 현장에서 목도하는 지체 현상은 외부인 눈으로 보면 더욱 생경할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실 직원이 필자에게 “출입기자입니까”라고 물었다. “방통위를 취재하지만 출입기자는 아니다”라고 답하자 출입기자가 아니면 기자실 출입이 불가하다며 나갈 것을 요구했다. 출입기자로서 얻는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닌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기자실조차 등록한 기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당시엔 별로 대항하지 못하고 기자실 문을 나섰다.
사실 기자실은 부차적인 문제다. 참여정부가 출입기자단의 나쁜 관행을 문제 삼으며 기자실을 없애려 한 전력이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공간인 기자실이 아닌 공간을 이용하는 기자단의 행태에 있다. 문제적 행태는 대개 기자단이 정보의 입구를 틀어쥔 카르텔을 공고화하는 것이다.
정부 부처 중에는 여전히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으면 공무원을 만나거나 추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정보 접근권에서 소외되는 곳들이 다수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출입처별로 차이가 있지만, 판결문이란 정보를 거의 독점적으로 제공 받을 수 있는 법원 기자단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2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문 전문을 공개한 오마이뉴스는 법원 기자단으로부터 ‘1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징계를 결정한 기자단은 대법원 판결까지 1~2심 판결문을 비공개한다는 관례를 근거로 댔지만, 이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헌법 109조 정신에 반한다. 결국 당시 징계의 진짜 이유는 법원으로부터 제공 받는 독점적인 정보제공 편의가 중단될 수 있단 우려였다.
만일 필자가 독립 언론인이나 연구자로서 한국의 아동학대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관련 판결문을 얻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자단에 등록된 언론사 소속이 아니고서야 해당 판결문을 구하기는 무척 어렵고, 충분한 자료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