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업의 마케팅은 온전히 직원의 몫이었다. 기업의 마케팅팀이 전략을 짜고 직접 실행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마케팅은 더 이상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기업의 마케팅팀은 업계나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인플루언서)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어떤 상호 작용을 하는지를 주로 고민한다. 사람들을 더 이상 정보의 수용자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팅 관점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 언론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media)가 곧 언론으로 번역되는 현실에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취재 현장에서 목도하는 지체 현상은 외부인 눈으로 보면 더욱 생경할 듯하다.

▲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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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경제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주간지 기자에겐 대개 출입처가 없고 담당하는 취재 분야만 있다. ‘출입처’란 기자실을 운영하거나 기자단이 존재하는 특정 정부 부처, 공공기관, 기업 등을 의미한다. 통신 분야를 취재하던 기자 초년생 시절 방송통신위원회의 각 부서별 사무실 전화번호부를 얻었을 때 횡재한 듯 기뻤다. 출입기자들에겐 그보다 더한 정보도 당연하게 제공되지만 초년생 주간지 기자는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횡재한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열심히 전화를 돌리며 정책 실무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IMEI(단말기고유식별번호), MVNO(통신재판매사업자), m-VoIP(모바일인터넷전화) 등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고, 이와 연계된 구조적인 문제가 산적한 통신 시장을 어떻게 개선할지 어떤 정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고, 때론 귀가 빨개질 정도로 통화를 하다 직접 만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방통위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같은 건물에 있는 기자실에도 가끔 들렀다. 거기엔 칸막이 출입기자 전용석이 있었고 브리핑을 하는 장소와 휴게실 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실 직원이 필자에게 “출입기자입니까”라고 물었다. “방통위를 취재하지만 출입기자는 아니다”라고 답하자 출입기자가 아니면 기자실 출입이 불가하다며 나갈 것을 요구했다. 출입기자로서 얻는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닌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기자실조차 등록한 기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당시엔 별로 대항하지 못하고 기자실 문을 나섰다.

사실 기자실은 부차적인 문제다. 참여정부가 출입기자단의 나쁜 관행을 문제 삼으며 기자실을 없애려 한 전력이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공간인 기자실이 아닌 공간을 이용하는 기자단의 행태에 있다. 문제적 행태는 대개 기자단이 정보의 입구를 틀어쥔 카르텔을 공고화하는 것이다.

정부 부처 중에는 여전히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으면 공무원을 만나거나 추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정보 접근권에서 소외되는 곳들이 다수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출입처별로 차이가 있지만, 판결문이란 정보를 거의 독점적으로 제공 받을 수 있는 법원 기자단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2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문 전문을 공개한 오마이뉴스는 법원 기자단으로부터 ‘1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징계를 결정한 기자단은 대법원 판결까지 1~2심 판결문을 비공개한다는 관례를 근거로 댔지만, 이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헌법 109조 정신에 반한다. 결국 당시 징계의 진짜 이유는 법원으로부터 제공 받는 독점적인 정보제공 편의가 중단될 수 있단 우려였다.

만일 필자가 독립 언론인이나 연구자로서 한국의 아동학대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관련 판결문을 얻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자단에 등록된 언론사 소속이 아니고서야 해당 판결문을 구하기는 무척 어렵고, 충분한 자료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이 글은 기자단을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자단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정보를 통제하려는 정부나 기관과 맞설 수 있는 주체다. 하지만 오히려 정보를 독점하려 방벽을 쌓는 기자단이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는 더 이상 기자들의 것이 아니다. 오직 취재해서 알아낸 정보만 기자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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