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한 사람이 당신에게 꼭 해 줄 이야기가 있다면 외면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그 사람이 한 평생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안위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관되게 싸워 온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라면? 당신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지요. 백기완 선생의 새 책 ‘버선발 이야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버선발 이야기’는 백기완 선생이 목숨을 걸고 쓴 책입니다. 백기완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 “심장병이 나빠져 아홉 시간도 더 칼을 댄 끝에 겨우 살아났다. 이어서 나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몰래몰래 목숨을 걸고 글을 써 매듭을 지은 것이 이 ‘버선발 이야기’” 라고 썼습니다.

‘버선발 이야기’, 자랑스러운 민중의 대서사시

말씀하셨다시피 이 책은 백기완 선생이 정말 목숨을 걸고 쓴 책입니다. 2018년 4월21일 백기완 선생이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해 계신 백기완 선생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백기완 선생과 제가 무슨 인연이 있냐구요?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인연이 아닌 상태로 30여 년 동안 백기완 선생을 존경해 저는 어쩌면 ‘백기완 키즈’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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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두환이 광주 민중을 학살 한 후 정권을 잡고 철권을 휘두르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당시 축제 때면 명망 있는 선생님들을 모셔 시국강연을 들었는데 전두환 정권은 그마저 못하게 탄압했습니다. 당시 강사를 모시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시국강연이 대게 반독재시위로 이어졌고, 그럴 경우 해당 강사에게 선동혐의를 씌워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절에 가장 인기 있는 시국강사가 백기완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강연 요청에 흔쾌히 응하셨습니다. 경찰이 가택연금을 하거나 학교 출입을 막았지만 담을 넘고 뒷산을 넘어 어떻게든 학교에 들어와 강연을 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전투경찰의 삼엄한 포위를 뚫고 학교에 나타나 사자후를 토하던 백기완 선생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연의 요지는 “불의에 맞서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살 것인가? 떨치고 일어나서 불의한 군사독재에 맞서라, 그것이 젊은 당신들이 해야 할 사명이다!” 백기완 선생의 강연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벼락같은 충격과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저 역시 깊이 감명 받아 군사독재가 지배하는 나라의 젊은이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백기완 선생을 쭉 지켜봤는데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인 노동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해 이 분 만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선생’이라 부르던 수많은 ‘어른’들이 변절하는 와중에도 백기완 선생만큼은 시종일관 노동자 등 민중들의 편에 서서 맨 앞에서 싸웠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진짜 어른’이 바로 백기완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불쌈꾼(혁명가) 백기완’ 2부작 다큐멘터리에 작가로 참여하는 인연까지 맺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죠? 제가 병원에 찾아갔을 때 백기완 선생은 큰 수술을 앞둔 상태인데도 신문을 읽고 계셨습니다. 신문을 잡은 백선생의 손은 노랗게 매말라 있었습니다. 강연장에서 불끈 주먹을 쥐고 젊은이들을 독려하던 무쇠 같은 팔뚝은 뼈만 앙상했습니다. 당시 백기완 선생은 심장의 관상동맥 3개 중 2개가 막혀 버렸고 하나 남은 혈관마저도 터진 상태였죠. 의사마저도 수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잠시 다리를 주물러 드리다가 “선생님, 곧 남북 왕래도 할 것 같은데 건강 회복하셔서 고향에도 가셔야죠?” 했더니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를 잘 설득해야 할 텐데 걱정이야” 하시더군요. 그런 후 아홉 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해 젊은이들을 위해 남은 기력을 다해 쓴 책이 바로 이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목숨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기완 선생은 13살이던 1946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유학 왔습니다. 어머니와 큰형과 누나는 북한에 남았다고 합니다. 곧이어 남북이 갈라지고 전쟁이 터져 축구선수의 꿈은 접어야 했습니다. 대신 백기완 선생은 평생을 반독재 투쟁과 통일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친일파와 분단세력이 세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 정권에게 백기완 선생은 눈엣가시였습니다.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투옥과 감금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박정희가 피살된 후 전두환 등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1979년 백기완 선생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백기완 선생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주도하자 전두환 일당은 백 선생을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에 끌고 가 살점이 떨어지고 창자가 빠져나올 만큼 혹독한 고문을 했습니다. 당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백기완 선생이 감옥에 갇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쓴 시가 ‘묏비나리’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목숨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묏비나리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 발 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 발 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 발 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농창 들어 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의 한 몸만
맴돌자 함이 아닐세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 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이하 생략)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고 주문한 그대로 백기완 선생 본인이 목숨을 걸고 젊은이들을 위해 그의 인생과 철학의 정수를 기록한 책이 바로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온 투사가 생의 마지막 고비에서 목숨 걸고 하는 이야기가 어찌 감동을 주지 않겠습니까?

‘버선발 이야기’는 일찍이 없었던 민중의 대서사시입니다. 백기완 선생은 서문에서 “이 이야기는 아마도 니나(민중)의 이야기로는 온이(인류)의 갈마(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 그러합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지만 대부분 종교의 지도자나 신, 민족 혹은 나라의 시조 등 지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버선발 이야기’는 맨발의 민중이 주인공이 되어 바다를 뒤엎고 산을 짓밟아 무너뜨리고 민중의 세상을 열어가는 장엄한 민중의 신화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민중의 대서사시, 민중의 역사서, 민중의 철학서, 민중의 투쟁 지침서가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중학생 때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가 감옥에서 딸을 위해 썼다는 ‘세계사 편력’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네루의 딸, 심지어 인도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에겐 왜 이런 책이 없을까? 하지만 이젠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백기완 선생의 ‘버선발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버선발 이야기’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동화이기도 합니다. 산 속에서 맨발로 자라 “버선발(벗은 발)”이라 불린 아이가 머슴으로 끌려간 엄마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떠돕니다. 버선발이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자신의 고단한 운명을 깨닫고 뒤틀린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싸우는 과정 자체가 박진감 넘치고 감동을 줍니다. 이 감동은 감성적인 글쟁이들이 주는 가벼운 감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백기완 선생은 평생 학교를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밝은 지혜를 갈고 닦아 실천에 옳긴 분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지행일치의 삶을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의 힘이 꿈틀거립니다.

아시다시피 백기완 선생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버선발 이야기’는 한자어와 영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완성한 이야기입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했기에 우리가 잊고 살아온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재미있고 아름답고 기운 찬 우리의 이야기, 이것이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 정재홍 ‘PD수첩’ 작가
▲ 정재홍 ‘PD수첩’ 작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물가에 우뚝 선 버드나무 같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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