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SBS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를 약속했던 대주주가 드라마 제작과 유통 기능을 SBS 외곽에서 합병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노조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는 25일 오전 긴급 성명을 통해 “윤석민 부회장은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합의를 통해 일단락됐던 노·사·대주주 간 갈등이 다시 증폭되고 있는 모양새다. 

2·20 합의에 따라 SBS 대주주이자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가 지난달 SBS에 SBS콘텐츠허브 지분을 매각하면서 SBS 중심으로 수직계열화가 진전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언론노조 SBS본부는 “사내 곳곳에서는 유통기능과 자산 환수가 완료되기 전 드라마 제작과 유통 기능을 SBS 외곽에서 합병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며 “노사 합의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방향의 움직임들이 대주주와 사측 일부 인사들 공조 속에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먼저 SBS 지배구조를 보면, SBS미디어홀딩스는 SBS 지분 36.92%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태영건설은 미디어홀딩스 지분 61.22%를 소유하고 있다. 25일 태영그룹 회장에 취임한 윤석민 회장 등이 태영건설 지분 30.94%를 보유하고 있다. 즉, SBS미디어그룹은 윤 회장의 실질적 영향력 아래 있다. 이 때문에 노조와 구성원이 소유와 경영 분리 감시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
논란이 되고 있는 SBS콘텐츠허브는 SBS미디어그룹 콘텐츠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기업이다. 쉽게 말하면 SBS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미디어홀딩스의 자회사였다. 

노조와 구성원들은 콘텐츠허브와 SBS 사이 불공정계약으로 SBS 수익이 대주주 미디어홀딩스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반발해왔다. SBS 주식보다 콘텐츠허브 주식을 더 많이 소유한 미디어홀딩스가 콘텐츠허브 쪽으로 수익을 몰고 배당을 챙겼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쉽게 말하면 지주회사 체제가 윤 회장 배만 불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또 SBS가 ‘드라마본부’를 본사에서 분리시켜 독립 법인으로 가동시킬 계획을 갖고 있어 SBS미디어그룹의 재편은 업계 관심 사안이었다. 노조는 제작과 유통 기능을 SBS 외곽에서 합병하게 되면 SBS 본사 경쟁력과 수익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고 사주 지배가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5일 노조 성명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사측은 김영섭 SBS드라마본부장을 지난 22일 SBS콘텐츠허브 사장에 기용했다. 김 본부장은 직전까지 SBS드라마본부장이었다. 현재 SBS 드라마 제작 자회사 스토리웍스 대표이기도 하다.

SBS가 드라마 제작 기능을 스토리웍스로 이관하려는 상황에서 제작과 유통 기능을 한 사람에게 맡긴 셈인데 노조는 “두 회사를 합병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고는 기능 분리를 하려고 하는 자회사(스토리웍스)와 기능 흡수가 예정된 자회사(콘텐츠허브)에 같은 사람을 임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사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 상암동 프리즘타워 16층에 이미 두 회사 간부들이 사실상 함께 근무하도록 공간 배치까지 마무리됐다. 공간·기능적 합병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겠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사측은 “제작과 유통 기능을 한 사람이 관리할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노사합의를 파기하려는 명백한 의사 표시”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SBS 자회사가 된 콘텐츠허브 이사진도 대주주가 완전히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SBSi 이사 출신 장진호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014년 3월 콘텐츠허브 사외이사에 선임됐는데 지난주 장 교수가 콘텐츠허브 이사회 의장에 임명되면서 윤석민 회장의 직할 지배가 가시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는 “장(진호)씨는 윤석민 부회장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문으로 지난 2000년부터 SBSi 경영에 함께 참여했던 최측근”이라며 “뿐만 아니라 아직도 콘텐츠허브 이사회 다수를 SBS 자회사 편입 이전에 윤석민 부회장이 임명한 이사들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지난달) SBS에 콘텐츠허브 지분을 8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받고 넘긴 SBS미디어홀딩스가 사실상 콘텐츠허브 경영을 장악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 같은 이사진 구성이라면 앞으로 콘텐츠허브 기능과 자산을 SBS로 내재화하는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SBS 이사진 구성은 미디어홀딩스 권한이다. 반면 지배구조상 콘텐츠허브를 포함한 SBS 자회사 이사진 구성은 SBS 경영진 권한과 책임이다.

노조는 “SBS 경영진은 스스로 이런 권한을 포기한 채 윤석민 부회장에게 그 권한을 순순히 내줬다”며 “특히 SBS 독립 경영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이동희 경영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대주주 손발 노릇을 하며 SBS 내부 독립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력화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번 콘텐츠허브 이사진 구성과 사장 선임은 윤석민 부회장이 지난달 2·20합의에 담긴 SBS 구조 개혁 방안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회사 조직을 끌고 가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명백히 한 것”이라며 “이미 회사 안에는 지금 추진 중인 드라마 분사를 시작으로 SBS에서 제작 기능을 모조리 빼내려 한다는 이야기가 사측 관계자들 발언을 통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노사합의에 반하는 자회사 합병 기도를 통해 윤석민 부회장과 사측이 추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박정훈 SBS 사장에게 노사 합의와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지켜낼 의지가 있는지 물은 뒤 “윤석민 부회장은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 SBS에 대한 소유·경영 분리 약속과 노사 합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또 사측에 콘텐츠허브 이사진 해임을 촉구하며 김영섭 콘텐츠허브 대표, 장진호 콘텐츠허브 이사회 의장, 이동희 SBS 경영본부장 등의 사퇴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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